"내가 젊은 시절 여기자 할 때는 왜 이 상이 없었나 몰라요. (웃음)"
봄빛 만개한 남산 자락에서 김후란(72) '문학의 집·서울' 대표는 10대 소녀처럼 웃었다.
그는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교 신입생마냥 분주해진다. 1984년 제정돼 올해 23회 수상자를 내는 '최은희 여기자상' 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88년 처음 심사위원이 됐으니 올해 18년째네요. 기자들에게 주는 상이 여럿 있지만 여기자들에겐 최은희 여기자상이 최고의 영예 아닌가요? 해마다 그렇지만 심사위원장으로서 긍지와 부담을 동시에 느낍니다."
김씨는 수필가로 이름이 높지만 동시에 한국일보·경향신문·서울신문 등지에서 23년간 기자생활을 한 언론인 출신. 최은희 여기자상이 김씨에게 더욱 각별한 이유는 한국 최초의 여기자인 최은희 선생의 생전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전의 최 선생님이 '여성독립운동사'라는 책을 출간하셨을 때 정동 자택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종이 한 장, 헝겊 한 조각 아껴 쓰시던 모습, 낡았지만 깨끗이 빨아 단정하게 걸어놓았던 커튼이 아직 눈에 선해요. 신문사 떠나신 뒤에도 방에 작은 소반 하나 놓고 매일매일 글을 쓰셨고, 그 원고료를 모아 후배들 뒷바라지하시겠다며 여기자상을 만드셨으니 그 어떤 상의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지요."
22회째 수상자를 선정해온 동안 격세지감도 많이 느낀다. "여기자들이 활약하는 분야가 정치, 사회, 문화는 물론 전쟁의 격전지까지 무한대로 넓어졌다는 것이죠."아쉬운 점도 있다. "여기자들이 남성들 영역에 도전하면서 전문 분야를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보다 거시적인 시야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밝혀내는 심층 기획기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현장 잠입 취재를 중시했던 최은희 선생이 여성 인권 실태를 취재하려고 권번(기생학교)에 잠입해 그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