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띠를 풀고 고 손기정(孫基禎) 선생의 넋과 함께 노사(勞使)상생을 향해 달린다!'
오는 10일 창립 60주년을 맞는 한국노총이 근로자와 일반인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마라톤대회를 창설해, 오는 5월 1일 노동절에 첫 대회를 갖기로 했다. 노동절엔 으레 도심에 붉은 머리띠와 수많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심지어 최루탄과 각목이 연상되던 살벌한 풍경을 올해부터 바꿔보자는 것이 노동절 마라톤대회의 출발점이다.
더 뜻 깊은 것은 사상 첫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생을 기리는 재단법인 손기정기념재단(이사장 강형구)이 올림픽 제패 70주년을 기념해 이 행사를 공동개최키로 했다는 점이다. 손 선생은 1936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 일제 치하에서 시달리던 국민들의 한(恨)을 풀어준 국민 영웅으로 지난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손기정기념재단과 한국노총 이용득(李龍得)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노동절 마라톤대회 공동개최 협약서'를 체결했다. 양 단체는 이에 따라 마라톤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으며 위원장은 노총 김성태(金聖泰) 상임부위원장이 맡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이 행사가 갖는 상징성과 기획취지에 뜻을 같이하고 대회를 후원키로 했다.
김 준비위원장은 8일 "한국경제가 세계 10위권으로 진입하는 데 이바지해온 노동계가 그동안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운동방식 때문에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며 "이 마라톤대회가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제하 손기정 선생이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듯이 노사(勞使)가 함께 달리며 사회 양극화 해소와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불균형을 없애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기정기념재단 강형구 이사장(중앙대 교수·서양화)은 "손기정 선생은 단순한 마라토너가 아니고 달리기를 통해 국민과 함께 해왔다"면서 "모든 것은 노동의 대가와 함께 찾아온다는 점을 이번 행사 참가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 선생의 외손자로 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준승 대회 집행위원장은 "할아버지의 마음은 결국 나라 사랑이었다"며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노총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약 2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대회는 5월 1일 서울 송파구 잠실주경기장에서 출발하며 하프코스, 10㎞, 5㎞ 단축 마라톤 등 세 종목으로 치러진다. 하프코스는 삼성교~대치교~영동6-1교 북단~서초구 견인차량보관소(반환점)~영동6교~영동1교~잠실주경기장이며, 10㎞는 하프코스에서 영동6교까지, 5㎞는 잠실주경기장에서 한강고수부지를 돌아 다시 주경기장으로 각각 골인한다.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가 아닌 일반인 마라톤 마니아들의 참여도 가능하다.
노총과 손기정기념재단은 철저히 상업성을 배제한다는 방침 아래 최소한의 참가비를 받기로 하고 완주자에게는 완주메달과 간식 등을 지급하고 각 코스별 1~6위까지 푸짐한 부상도 시상키로 했다.
노총과 손기정기념재단의 마라톤대회 창설 소식이 소문나면서 벌써부터 각 회사 노조원들이 대거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전력노조 김주영 위원장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내에만 수천명의 조합원이 마라톤을 하고 있다"며 "이번 대회에 10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참가해 뜻 깊은 노동절의 의미도 새기고 손기정 선생의 세계제패도 기념하겠다"고 말했다. 또 SK텔레콤 노조도 500여 명이 참가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노총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