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 소녀, 도마뱀으로 환생한 할머니, 비처럼 쏟아지는 빨간 헬멧들, 페트 병이 쌓여 이루어진 거대한 산, 그리고 '페트병 산'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태국의 연인들…

'시티즌 독'은 이미지로 말하는 영화다. 드라마의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은 태국에서 보내온 이 엉뚱한 판타지에 당황하기 십상. 하지만 '시티즌 독'의 동화적 상상력은 최근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른 태국 영화가 어떤 에너지를 품고 있는 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내용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관객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이미지에 홀리면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팟(마하스무트 분야락)은 무작정 방콕으로 상경해 통조림 공장에 취직한다. 컨베이어 시스템의 일부처럼 기계적인 작업을 반복하던 팟은 생선 대신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자르는 실수를 저지른다.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은 이 지점부터. 우울한 비극으로 진행될 것 같던 영화는 '꿈 없는' 팟이 '꿈 많은' 처녀 진(상통 켓우통)을 만나면서 해맑은 꿈을 꾸기 시작한다. 팟과 진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개구리 같은 상상력이 끼어들기 시작하는 것. '헬멧 비'와 '페트병 산'도 그 한 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같은 도시 방콕, 도시 안에서 잃어버린 꿈과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이 그 이미지 안에 녹아 있다.

2000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 받았던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의 두번째 영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비평적 용어가 어울릴 만큼, 현실과 환상이 제멋대로 뒤엉킨 작품이다. 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