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현 대표

올해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 수상작 '크래시(Crash)'는 두 가지 대목에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능가하는 화제작이 될 것 같다. 하나는 7만5000달러(약 7500만원)라는 '헐값'에 수입됐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칫 한국 극장에서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할 뻔 했다는 점이다.

영화사 타이거픽쳐스의 조철현 대표가 '크래시'를 구입한 것은 지난 2005년 11월 아메리칸 필름 마켓. 아카데미 후보가 발표 전이었던 덕에 7500만원이라는 턱없이 낮은 가격에 구입이 가능했다. '크래시'는 '킹콩'의 1/30 제작비인 650만달러(약 65억원)로 만든 저예산 독립영화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LA를 배경으로 백인 지방검사 부부, 페르시아 출신의 가게 주인, 연인인 두 경찰관, 흑인 TV 연출자 부부, 그리고 중년의 한국인 커플 등이 '교통사고'(Crash)를 계기로 서로 얽혀들며 인종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을 그렸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시나리오 작가인 폴 해기스의 감독데뷔작으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매료된 샌드라 불럭, 맷 딜런 등이 앞다퉈 '노개런티' 혹은 '염가'로 출연할 만큼 작품성이 탁월한 영화. 그러나 '흥행 가능성'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샌드라 불럭(오른쪽), 맷 딜런 등이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줄을 이어 출연한 저예산 영화 ‘크래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영예를 안았다.

문제는 그 다음. 'K-19' '칠검' 등 대형 외화를 수입·배급하다 20억원 가까운 빚을 지게 된 조 대표는 '크래시'를 두고 이후 4개월간 고민에 빠졌다. 50개 정도의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려면 마케팅 비용만 4억원 가량 필요한 상황에서 도저히 여력이 없었다. 결국 "미국 왕복 비행기표 값만 추가해주면 그냥 넘기겠다"고 다른 영화사에 제안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결국 자포자기 끝에 조 대표가 생각한 마지막 대안은 원가만 받고 공중파 TV에 넘기는 것. 그는 "KBS와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었다"면서 "좋은 영화를 사장시키느니 차라리 TV에서 틀면 100만~200만명은 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작품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조 대표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고 옛날처럼 엄청난 관객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회는 생긴 것 같다"면서 "이전에 빚진 배급사와 상의, 4월 중에 개봉 일정을 잡으려고 한다"고 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조철현 대표는 '크로커다일 던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800여 편의 외화를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며 '메멘토' '헤드윅' 등을 소개해온 눈밝은 영화수입상.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과 함께 1993년 영화사 '씨네월드'를 설립한 창립 멤버로, 영화사아침의 정승혜 대표와 함께 '씨네월드 3인방'으로 불린다. '황산벌'(이준익 감독·2003)의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사를 차려 독립한 뒤 첫 영화인 '달마야, 서울가자'(2004)를 이 감독과 공동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