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이 예산을 잘못 썼다며 그 돈을 국가에 반납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보기 드문 일이 최근 인천에서 일어났다. 인천시 서구의회가 의원과 직원들의 등산복과 등산화 구입에 썼던 1086만원을 의회 회계에 반납한 것이다. 구의원 13명이 58만여 원씩 756만원, 의회 사무국 직원들이 330만원이었다.

서구의회가 자발적으로 예산을 반납한 것은 물론 아니다. 시민단체가 예산 부당 사용을 폭로하며 주민감사를 청구하고 예산 환수를 위한 주민소송까지 벌이겠다고 하자 '항복'한 것이다.

서구의회는 작년 말 '의회 운영 공통경비'로 등산복과 등산화를 샀다. 공통경비는 공적인 의정 활동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돈이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부당한 예산 사용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달 10일 서구 주민 340명의 서명을 받아 서구의회에 대한 감사를 인천시에 청구했다. 주민소송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그러자 처음에는 문제될 게 없다며 버티던 서구의회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 사례는 올 1월 처음 도입된 주민소송제도가 지방자치단체의 비리를 막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재 서구의회뿐 아니라, 몇몇 지역에서 주민소송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부실공사나 법을 무시한 행정으로 예산낭비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곳들이다.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탄천변 도로 건설 문제를 놓고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민소송 절차에 들어갔다. 최근 주민 200명의 서명을 받는 등 감사청구 준비를 끝냈다. 탄천변 도로(1.2㎞)는 성남시가 179억원을 들여 작년 10월 완공했다. 그러나 도로 중 270m가 인근 서울공항의 비행안전구역을 침범해 불법이라며 공군이 문제를 삼았다. 결국 지난달 초 국무조정실에서 군용항공기지법을 위반한 불법 도로라는 판정과 함께 도로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예산 179억원은 허공에 날아가버렸다.

문제는 성남시가 법규정에 어긋난 도로 건설을 왜 추진했느냐이다. 담당 부서 공무원들이 법률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실무자들은 법적 문제를 제기했으나 시장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인지가 핵심이다. 성남시는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저 늘어나는 교통량 처리와 주민편의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말뿐이다. 성남시민연대는 주민소송을 통해 책임자를 밝히고 낭비된 예산도 환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는 음식물쓰레기처리시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 8월 59억원을 들여 설치한 이 시설은 당초 하루 100t 처리가 목표였으나 20~30t밖에 못 하고 있다. 때문에 하루 발생량 80t 중 나머지 부분을 민간위탁처리하느라 또 다른 돈이 들어가고 있다. 시의회 조사 결과 발주, 시공, 설계, 감리 등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책임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광명경실련은 "총체적인 관급 부실공사"라며 책임규명과 예산 환수를 위한 주민소송절차를 밟고 있다.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썩은 지방권력 교체" "지방정부 심판" 등의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이런 구호대로 된다고 지방정부가 갑자기 달라질 수 있을까. 지방정부의 부패를 막는 '소금'의 필요성은 여전하고 가장 짠 소금은 주민소송 같은 시민운동일 것이다.


(김낭기 인천취재본부장 ng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