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등 두 전직 대통령이 한 달 간격으로 생일을 맞았지만 생일 잔치는 확연히 차이났다. 이들은 올해 75세 생일을 맞았다.

옐친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 생일을 맞았다. 러시아에서 5년과 10년째 생일은 '유빌레이'로 불리며 보통 때보다 훨씬 성대한 축하 파티를 한다. 두 전직 대통령도 나이 때문에 80회 생일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75세 생일의 의미는 각별했다.

생일을 먼저 맞은 옐친 전 대통령은 생애 가장 행복한 생일을 맞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배려로 크렘린궁 게오그리예프 홀에서 생일을 맞았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행사를 베풀던 크렘린궁에서 생일을 맞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한 정치 은인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파격적인 생일 잔치를 마련했다. 생일 파티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옛 소련 공화국 대통령 등 옐친과 동시대를 이끌었던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각료, 의회 의장 및 의원들, 주지사 등 러시아 전·현직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생일도 콘서트에 이은 연회라는 형식은 옐친 대통령 생일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생일은 가족들과 일부 정치인들만이 참석한 채 조용히 치러졌다. 한스 디트리히-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 정도가 외국에서 축하객으로 참석했을 뿐이었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동영상 축하 메시지만 보내왔다. 푸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생일날 체코 방문 중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생일상의 차이는 후임 대통령과 정치 후계자 지목에서 비롯된 엇갈린 명암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는 소련이 붕괴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냉랭하다. 지난 1991년 8월 보수파 쿠데타 발생 이후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물러나고 옐친 대통령이 권좌를 장악하면서 이들은 정적관계가 돼버렸다.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에 대한 앙금을 삭이지 못한 채 아예 회동조차 않는 등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당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소련 붕괴와 러시아의 몰락을 가져온 정치인'으로 폄하돼왔다. 옐친 대통령도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를 이끌며 자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국력을 약화시킨 나약한 대통령'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옐친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후계자로 삼은 것을 유일한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정도다.

전(全)러시아여론조사센터(VCIOM)가 최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 1917년 사회주의 혁명 후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를 묻는 질문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3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와 옐친 전 대통령은 각각 2%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3%가 적개심 등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경제를 바로잡아 국민들을 살 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생일은 이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민심을 엿보게 한 이벤트였다.

(정병선·모스크바 특파원 bs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