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혼자서 세계 구석구석을 걷는다.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 여자, 강심장을 가졌거나 호된 시련을 겪었음에 틀림없다고. 그런데 틀렸다. 13년째 '나 홀로 여행'을 강행하고 있는 김남희(36)씨는 "떠날 때마다 무섭고 겁이 난다"고 고백하는 여린 사람이다. 그럼에도 걷고, 또 걷는 이유는 "길의 끝에 다다른 순간 내게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문명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에 등 돌릴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4년 전 우리 땅 850㎞를 도보로 여행한 뒤 국토 종단기를 펴냈던 그녀가 이번에는 스페인의 유명한 '산티아고로 가는 길'(카미노 데 산티아고) 800㎞를 36일에 걸쳐 걸은 뒤 두 번째 책을 냈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다로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스페인 산티아고 편'(미래 M&B)이 그것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선택한 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1만2000㎞의 실크로드를 걸었던 올리비에가 실크로드로 가기 전 걸었던 곳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예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부터 걸어왔던 '영적인' 길이죠. 지금도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밀밭길, 포도밭 샛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1993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 떠난 67일간의 배낭여행에서 '혼자 걷는 행복'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소심하고 예민한 20대 직장인의 탈출구이자 바람이 들고나는 구멍통이었죠." 잘 다니던 터키 대사관에 사표를 던진 건, 2002년 여름 해남부터 고성까지 꼬박 29일간 국토종단 걷기 여행을 감행한 직후다. "어차피 인생이 선택이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저는 직장·남편·적금통장 대신 미지의 세계를 선택하고 싶었어요."
그 후 중국 라오스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네팔 인도를 여행했고,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거쳐 지난해 6월 스페인 산티아고로 갔다. 그는 "수많은 길을 걸었지만, 언제든 자신을 열고 마음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여행자들과 함께 걸었던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다"고 말한다.
여행만 다닌 것은 아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는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어 티베트 노인들을 위한 공동체를 짓는 데 보탰고, 첫 번째 책의 인세를 털어 인도 보드가야의 '석가모니 부처 공동체 건강병원'의 운영비를 지원했다.
여행은 계속된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으로 가려고요. 세계여행을 끝내고 나면 청소년을 위한 여행학교를 만들 거예요. 프랑스에선 비행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할아버지 자원봉사자와 함께 2000㎞를 걷는 '벌'을 준대요. 여행이 갖는 치유의 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