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조건없이 내놓은 8000억원에 대해 대통령은 정부가 나서서 용도를 정하는 과정과 절차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소외계층 지원에 이 돈을 사용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독일에선 기업·개인 헌금을 정부가 필요한 데 쓰겠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기업·개인 헌금에 정부가 추가 지원해 '더욱 큰 기금을 형성'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지금도 논의가 늦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독일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기초연구'에 헌금이 전적으로 투입되기를 바란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재단, BMW의 크반트재단 (Quandt-Stiftung), 보슈 (Bosch)의 베르크호프 재단 (Berghof-Stiftung), 다임러-벤츠 재단, 튀센 재단, 베르텔스만 재단 등이 중점적으로 기초연구를 지원한다. 이 재단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인문, 사회, 이공계를 포함한 전 학문에 걸친 기초연구를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재단들이다. 폴크스바겐 재단은 연간 재단 지원금의 약 38%가 인문·사회계, 35%가 바이오 (의학 포함), 25% 정도가 자연·이공계, 수학 기초연구에 지원되고 있다.
기초연구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논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정말 절실한 것이다. 우리의 좋은 머리들이 장기적으로 기초연구를 통하여 보람을 느끼게 하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둘째, 독일의 재단들은 지원에 있어서 분업체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점은 있다. 하나는 '인간의 미래', '지구의 미래' 연구(학문 간 및 국제 간의 협력을 전제)이며 다른 하나는 국제관계, 이(異)문화의 화합이다. 개별 재단의 지원 중점을 보면 다임러-벤츠 재단은 '노동과정, 조직, 질'에 관하여, 보슈의 베르크호프 재단은 '평화연구와 평화교육'에, 크반트 재단은 '이문화의 화합'(trialog라고 부른다), 베르텔스만 재단은 '민주주의 발전 비교, 동구의 체제변혁', 튀센 재단은 '인식 철학 분야'다. 그러나 기초연구의 중점에서 어느 정도 기대한 기초연구의 결과가 나오면 새로운 중점분야가 선정된다.
셋째, 8000억 헌금은 위에서 말한 기초연구에 목적을 둔다면 큰일은 할 수 없다. 장기예치로 이자율 5%를 잡는다면 (낙관적으로 보아) 연간 이자수입은 불과 4000만 달러다. 이것 갖고는 사실상 이공계 기초연구 프로젝트 한두 가지밖에 지원 못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폴크스바겐 재단의 연간 예산을 1억2000만달러로 보면 삼성 헌금은 불과 3분의 1 정도다. 필자는 삼성의 호의를 높이 평가하지만 '여기 조금, 저기 조금' 하다가는 아쉬운 기초연구에 아무런 시너지효과를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넷째, 독일 재단지원의 성공을 분석하면 '가족경영 중심의 재단'이 대부분이다. 공익 재단은 비교적 약세다. '가족 경영'이라 해서 가족이 직접 나와 재단을 지배한다는 것은 아니다. 재단은 돈을 낸 기업과 법적, 제도적, 인사 차원에서 완전히 별개의 독립조직이다. 만약 기업의 가족경영이 재단의 기초연구과제 선정과 지원금 배정에 있어 영향을 주었다면 아마 이러한 재단은 도덕적으로 멸망하게 되며 또 이것은 당해 기업의 사업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필자는 독일에서 이러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재단의 조직은 중역회, 감사회(각계의 대표들), 자문회(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라는 3개 조직이 '톱니 바퀴'같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하자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미루어 봐 삼성의 헌금은 '삼성'이 맡아 기초연구 재단이 발족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위해 삼성은 베르텔스만 재단의 '몬(Mohn)' 일가, 크반트 재단의 '크반트 (Quandt)' 일가를 벤치마킹하기를 권하고 싶다.
(박성조 ·베를린자유大교수 · 현 서울대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