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보〉(146~165)=패(覇)는 바둑의 꽃이자 반상(盤上)의 마물이다. 바둑이 치열할수록, 격렬한 기풍의 소유자들일수록 패가 자주 등장한다. 초반부터 끝없는 패싸움으로 바둑 판 도처에 유혈이 낭자한데 하변에서 다시 패가 진행 중이다. 흑이 잠시 손을 빼 우변을 움직여 ?로 호구친 데 까지가 지금까지의 경과.

하지만 ?는 착각이 빚은 문제수였다. 참고 1도 1에 이어야 2로 움직여도 5 이후 A와 B를 맞봐 무사하다. 따라서 흑 1이면 백은 하변 패를 계속해야 하는데, 흑이 실전보 '가'로 빗장을 걸어 흑 승이었다는 결론. 잔수에 밝은 이세돌, 146에 붙여 즉각 수를 내러 간다.

147은 어쩔 수 없다. 참고 2도 흑 1은 백 4, 6 이하로 걸려들기 때문. 152 묘수! 이 수로 먼저 163 단수는 자충으로 안 된다. 구리도 이 것을 착각했다. 결국 163까지 우변 반 토막이 살아가는 권리를 남긴 채 하변 패가 계속된다. 그러나 148의 수단을 발동한 시기가 너무 빨랐다니, 바둑처럼 어려운 게임이 세상에 또 있으랴. (160…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