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은 지방선거 보도하면서 수도권 얘기만 쓰더군."
"거기가 최고 격전지니까요."
"내 생각엔 수도권 못지않게 의미있는 곳이 전라북도인데…."
최근 만난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그의 얘기를 몇몇 다른 정치인들에게 전했더니 공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정과 논리는 이렇다.
우선 여권 대권 경쟁 측면에서 보면 두 유력주자인 고건 전 총리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 간의 승패(勝敗)가 전북 선거결과에 따라 일찍 결판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고향이 전북이다. 따라서 똑같이 범여권에 뿌리를 두면서 호남표를 기본점수로 확보하고 거기에 다른 지역 표를 더하는 전략을 펼쳐야 하는 입장이다. 두 사람은 이처럼 지역적 지지기반이 겹치기 때문에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주저앉혀야 하는' 숙적(宿敵) 관계나 다름없다. 정 의장측이 왜 고 전 총리를 반기겠으며 고 전 총리는 누구 좋으라고 여당에 들어가겠는가. 당장 만날 것 같았던 두 사람이 회동 자체를 무기연기한 건 당연한 결과다.
전북 선거를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를 중요 변수로 보는 건 정 의장의 다급한 처지 때문이다. 현재 여당 지지도는 18.4%(KSOI 21일 조사)에 불과하다. 상황이 별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서 정 의장으로선 여당이 수도권 같은 요충지에서 져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당은 텃밭으로 여겨온 광주(26.3% 대 36.3%)·전남(26.0% 대 37.2%)서도 민주당에 크게 뒤진다(한국갤럽 1월 1일 발표). 정 의장측으로선 두 지역 선거가 잘못돼도 "우리 잘못은 아니다"고 방어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 의장이 전북 선거를 이기지 못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지역의 최대 라이벌인 민주당과의 정당지지도 우열은 따질 필요도 없이 "고향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권을…"이라는 식의 회의론이 쏟아질 것이다. 이러니 정 의장으로선 전북 선거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정 의장에게 위기는 고 전 총리에겐 호기(好機)인 게 정치계산법이다. 고 전 총리가 여당 밖에 머물며 전북지사에 자기가 미는 사람을 당선시키는 게 정 의장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고 전 총리(25.7%)가 국민지지도에서 정 의장(11.0%·월드리서치 21일 조사)을 배 이상 앞서고 있어 고 전 총리가 맘먹기에 따라 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고 전 총리가 정말로 대통령 되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는 전북 선거를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 전 총리를 만나본 사람들은 "고 전 총리도 그 정도 계산은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전북 선거 결과는 지방선거 후 정계재편의 뇌관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민주당이 광주·전남과 함께 전북에서도 이기면 여당 내 호남 세력이 흔들릴 것이고 곧바로 대선을 겨냥한 정계재편이 일어날 것"(민주당 정균환 전북도당위원장)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16일 고 전 총리를 만나 전북 선거를 도와달라고 특별히 요청한 데에는 이런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전북에서 '민주당·고건 연대'가 이뤄져 이긴다면 '여당 내 호남세력 이탈→고건+여당 탈당세력+민주당+a로 이뤄진 신당 창당'의 정계재편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정 의장이 이기면 민주당 등 호남세력의 일부가 여당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전북 선거는 관중 입장에선 흥미 만점일 수밖에 없다.
(신효섭 논설위원 bomna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