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역사평론가

조선의 유명한 독서광 김득신(金得臣·1604~84)의 시문집 '백곡집(栢谷集)'이 최근 국역(國譯)되었다. 읽은 편명(篇名)의 횟수를 적은 '독수기(讀數記)'를 남긴 김득신은 '사기(史記)'백이전(伯夷傳)을 11만 1000번 읽었고, 이를 기념해 서재의 이름도 억만재(億萬齋)라고 제호(題號)했다. 1만 독(讀)에 미달하는 편명은 독수기에서 제외할 정도로 독서광이었던 그는 부인의 상(喪) 때도 호곡(號哭) 소리에 맞춰 백이전을 읊조렸다는 일화가 있다. 젊은 시절 번번이 낙과(落科)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부에는 재질이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도 들었던 김득신은 현종 3년(1662) 59세의 나이로 끝내 문과에 급제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득신이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할 정도의 중독가(重讀家)라면 정약용(丁若鏞)은 정독가(精讀家)이자 광독가(廣讀家)였다.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학유(學游)에게 준 글에서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해서 자못 깨달은 바가 있는데,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더라도 오히려 읽지 않은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의 독서법은 "한 글자라도 모르는 곳이 나오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茶山)은 '사기'자객열전(刺客列傳)의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노신(路神)에게 제사를 지내다"라는 뜻의 기조취도(旣祖就道)를 예로 설명한다. 제사에 '祖(조)'자를 쓰는 이유를 사전에서 찾으면 '옛날 황제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것으로 그치지 말고 '통전(通典)'이나 '통지(通志)''문헌통고(文獻通考)'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의 예를 모으면 그에 관한 전문가가 된다. 이렇게 하면 한 가지 책을 읽더라도 수백 가지의 책을 아울러 엿보는 것이 된다. 다산은 이것을 독서의 큰 즐거움이라고 덧붙인다.

두 사람의 독서법은 모두 일리가 있다. 그중에서도 다산의 독서법은 지식을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수험생에게도 권할 만한 독서법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