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주위가 어두컴컴해지고, 흑백 세상이 된 듯했다. 안개가 심하게 낀 날 선글라스를 쓴 느낌이었다. 학창시절 고난도의 색약 검사에서 0.5초 속도의 빠른 색 감별력을 자랑했었지만 간호사가 눈앞에 갖다 댄 초록색과 파란색 색종이 구별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시야도 갑자기 줄어들어, 아무리 애를 써도 좌우가 보이지 않았다. 정면에 있는 물체만 보여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눈이 뻑뻑하게 아프고 피로해졌다. ‘노인체험’을 위해 스키장에서 쓰는 고글 같은 특수 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시야 답답하고 말소리는 윙윙… 다리 후들후들… 앉고 싶기만
'이렇게 힘든데 어찌 살까' 싶어

앞이 안보여 우왕좌왕하는 기자에게 간호사가 내민 것은 작은 귀마개. 갑자기 간호사의 말 소리가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눈도 안 보이는데, 귀까지 잘 안 들리니 감옥이 따로 없었다. 입 모양을 쳐다보지 않고서는 뭐라고 말하는지 뜻을 명확히 알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팔과 다리, 허리의 근육을 약화시킬 차례. 특히 골밀도 감소 체험을 위해 허리에 특수 자켓을 입자 지팡이의 도움 없이는 서 있을 수 없게 됐다. 한쪽 팔로 지팡이를 짚어 굽은 허리를 지탱하니, 반대편 팔이 자연스럽게 허리로 가서 '꼬부랑 할머니'가 연출됐다. 팔 다리에 관절을 둔화시키는 특수 장비와 묵직한 모래주머니까지 착용하니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주저 앉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촉각을 둔화시키기 위한 장갑을 끼었다.

5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영락없는 80세 할머니로 변신한 기자는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지하 2층에서 계단을 올라 지상 1층으로 갔다. 평소 두어 칸씩 뛰어 올랐던 계단이 그리 높아 보일 수 없었다. 둔화된 무릎 근육 때문에 등줄기에는 땀이 흘렀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계단 한 층을 올랐을 뿐인데, 등산이라도 한 양 온 몸이 뻐근했다.

한 숨 돌리고 이동한 곳은 횡단보도 앞. 지팡이를 쥔 손에는 벌써 물집이 잡혀 욱신거렸다. 신호등은 눈 앞에 있지만, 시야가 좁은 안경 탓에 정면만 볼 수 있어 계속 두리번거려야 하니 여간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었다. 노인이 되면 '길눈이 어두워 진다'는 옛말 그대로였다.

횡단보도를 지나 정류장으로 이동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의 가파른 계단에 다리 하나 올리는 데도 천근의 무게가 느껴졌다. 느릿느릿 버스에 오르고 보니 다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빈자리를 보니 그저 앉고 싶은 생각뿐. 의자에 털썩 앉으니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다음으로 병원을 혼자 찾는 노인을 체험하기 위해 병원 로비의 진료의뢰서를 작성해봤다. 특수 장갑 때문에 펜을 제대로 잡기조차 힘들었다. 몇 번이나 펜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겨우 진료의뢰서 1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글씨는 삐뚤삐뚤,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1시간 30분간의 노인체험을 마치고 간호사실로 돌아왔다. 안경 벗고 장비 내려 놓으니, 그곳이 신천지(新天地)였다. 선명한 색감의 탁 트인 시야에 가슴마저 뻥 뚫렸고, 저 멀리 뒷산의 새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다. 족쇄를 벗은 팔과 다리는 하늘을 날 것처럼 가벼웠다.

"정말 이런가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살 수 있나요?"

담당 간호사는 "아마 노인들의 신체 기능은 체험한 것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며 "다행스럽게도 노화는 아주 서서히 진행되므로 노인들이 몸으로 느끼는 변화와 고통의 정도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힘겹게 계단을 올라왔다. 자동적으로 의자에서 엉덩이가 떨어졌다. '미래를 보는 거울이 있다면, 저 모습이 바로 내가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