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재판장 황현주)는 17일 분식회계로 4148억원을 대출받고 8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이 두산그룹 비리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재판을 겨냥해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발언한 것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로 그날 법원이 재벌 오너의 비리사건에 대해 중형(重刑)을 선고한 것이다.

특히 이 선고는 횡령 액수가 두산 오너 일가보다 훨씬 적었음에도 실형(實刑)이 선고된 것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재판부는 "부실 대출한 금융기관에 국민 세금이 투입된 점을 감안하면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김회장을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법원의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기업인들도 향후 법원의 형량이 강화될까봐 긴장하는 눈치다. 현재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허태학 전 삼성에버랜드 사장, 김석원 전 쌍용양회 명예회장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 9일 고법 부장 승진자 19명과 만찬 자리에서 "기업인 비리와 화이트 칼라 범죄 재판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어제 보도된 언론의 비판 내용을 보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 아니냐. 절도범은 실형을 선고하고 기업범죄는 집행유예하면 신뢰를 얻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법이 8일 286억원 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두산그룹 오너일가 4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 대법원장은 두산그룹 오너에 대한 선고 직후 "국민신뢰를 얻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결을 한 강형주 부장판사는 "오지말라"는 대법원의 메시지에 따라 만찬에 불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신뢰 회복과 '화이트 칼라 범죄 엄벌'은 대법원장이 늘 강조하던 말씀"이라며 "솔직히 옳은 말씀 아니냐"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법원의 권력층 봐주기 관행을 지적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까지 대법원장의 "재판의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많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저렇게 말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무서워서 재판을 하겠느냐.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한데, 거꾸로 여론 재판을 하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당장 두산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물론, 다른 기업인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