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 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최근 묘비명을 미리 써놓았다. 평소 '뜨겁게, 진실되게, 후회 없이'라는 부사어를 삶의 지표로 삼는 작가답다. 그녀는 신작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나란히 베스트셀러 종합부문 상위에 올려놓았다. 스크린쿼터와 같은 보호 장치가 없는 문학시장에서 한동안 외국소설에 눌렸던 한국소설의 자존심을 홀로 지키고 있는 '잔 다르크'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겠다는 작가는 올해 가족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소설 '가족'(가제)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당신의 대학 학과(연세대 영문과) 선배인 작가 최인호씨가 월간 '샘터'에 연재 중인 '가족'을 통해 집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렸다. 이제 공지영의 '가족'이 나오는 건가.
"최인호 선배님의 '가족'을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같은 제목을 생각해봤다. 현재 창간 준비 중인 한 월간지에 연재할 계획이다."
―아이들이 많이 컸겠다.
"큰딸은 고3이고, 두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이다. 큰딸은 키가 172센티미터에 (웃으면서) 얼마나 예쁜데…. 글도 잘 쓴다. 작가가 되겠다고 한다. 두 아들이 싸우면 불러모아서 일장 연설을 한다. '성씨도 다른 너희 형제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서로 도와야 하는데, 이렇게 싸워서야 되느냐'고 장황하게 말을 하는데, 너무 비장하게 말하니까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더라."
―각각 성(姓)이 다른 아이들을 전부 엄마 성씨로 바꿀 생각이 있나.
"내 성씨로 통일하려고 가족 회의를 열었더니, 아이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자기들이 그동안 사회 생활을 통해 써오던 성씨를 왜 이제 와서야 바꾸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웃으면서) 공씨는 싫다고 하더라."
―현재 베스트셀러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같은 주제와 인물을 놓고 각자 쓴 연애 소설이다. 마음 먹고 20대 독자를 겨냥한 듯한데.
"'사랑 후에…'의 주인공은 29살 여자다. 첫 사랑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할 나이다. 인생에서 20대 후반이 가장 힘들면서 아름답지 않을까. 20대의 언어 감각을 유지하려고 취재를 했더니, 아무런 거부감 없이 외래어를 일상 대화에서 많이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 감각에 맞는 문장을 일부러 썼다. 가령, '옐로에 가까운 블루빛'이라든가 '레몬밤티를 주문했다' 등등이다. 일본 소설이 한국의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피하고 모던하면서도 쿨한 이야기를 정제된 문장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한국 작가들은 그동안 사랑 이야기를 써도 연애가 아니라 불륜을 썼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연애 소설을 갈망하는 10대 후반과 20대 독자들을 일본 작가들이 가져갔다."
―당신은 386세대 작가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다. 최근 당신의 문학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80년대 초반 문학관을 너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격변했다. 소설의 사회적 책무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너무 지나쳐도 문제다. 과거에는 작가들이 '문인 간첩단'으로 몰려도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때는 문학이 대신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언론이 다 말하고 있다. 소설이 소설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좋은 때다. 앞으로 내 소설의 화두는 '경쾌와 발랄 그리고 희망'이다."
―계간 '문학수첩' 최신호의 특집 '여성문학을 묻다'에 글을 쓴 평론가 정문순씨가 당신 소설에 대해 "운동권 경력을 활자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배면에 깔려있다는 의혹을 떨치기 힘들다"고 비판했는데.
"지금 21세기에 과거 운동권 경력을 들먹거리는 게 너무 웃긴다. 난 내 경력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을 계기로 386세대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나왔을 때는 그런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었던 상황이었다. 그 책이 역사의 금기를 깨고 인식의 지평을 넓힌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생했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좌·우파가 서로 논쟁을 거쳐 '해방전후사의 재재인식'이 탄생하길 바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당신은 신부님들과 함께 사형제 폐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오는 4월이면 법무부로부터 교화위원증을 받는다. 지난 1년 6개월 이상 사형수 교화 운동에 봉사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요즘엔 매달 한 차례씩 교도소를 찾아가 하루 종일 사형수들과 미사도 드리고, 식사하고, 대화를 나눈다. 모두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다. 사형이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수단이라면, 그들에게 종신형을 내려서 격리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는 당신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지독한 낙관, 집중 그리고 명랑이다."
-남성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내가 잘못해도 내 편을 들어줄 것."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창 밖에 비가 내리는 어느 일요일, 오징어랑 사과랑 향기로운 커피가 담긴 쟁반을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을 다섯 권쯤 읽으며 뒹굴거리는 것. 혹은 바람이 불고 기온은 높고 하늘은 시퍼런 날 나뭇잎은 흔들리는데 시골집에서 날 방문하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고기를 재고 차가운 맥주를 준비하는 일…."
소설가 공지영씨의 전자 우편 주소는 gsmaria로 시작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녀의 영세명이 마리아니까, '신(神)의 마리아'란 뜻이라고 한다. 1988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스스로 '평균적인 386세대'라고 했다. "위장취업이 들통나 구류를 살았다. 그러나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하지만 고뇌의 시절은 살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의 인물은 세종대왕이다. "한글을 만든 것은 지금도 '어머' 하고 감탄하고 있다. 고맙기도 하고…." 싫어하는 인물은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이 그들로 인해 너무도 그들과 닮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20대에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보게 만들고…."
'공지영 소설'이 잘 읽히는 비결에 대해 그녀는 "문법과 문장에 구애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열렬한 에너지로 쓴다는 소릴 듣는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주종과 주량? "먹을수록 소주가…. 주량은 몰라요. 그냥 졸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