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내 차기 대선 유력 주자인 정동영(鄭東泳) 전 의원과 김근태(金勤泰) 의원. 두 사람이 최근 서로를 겨냥한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설전(舌戰)은 오프라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두 의원 지지자들은 인터넷에서 댓글을 통해 기선 잡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1월 13일 김근태 의원 홈페이지의 '김근태 친구들' 코너. 김 의원 지지자들이 정 전 의원 비난 글을 당 홈페이지 등에 올리자 정 전 의원 지지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아이디 '정동영 대통령'이라는 네티즌이 '님들이 김 의원을 지지하든 그건 내 알 바 아닌데요, 구차하게 당게(정당게시판)에서 정 전 장관님 공격하는 짓은 중단해 주시죠…'라는 댓글을 올린 것. 김 의원 지지자들이 곧바로 받아쳤다.
'말하는 것을 보니 진짜 정동영 아닌가요, 매너 없는 것 하며 반성할 줄 모르고 자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 하며….(아이디 바른손)'
이런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틀간 40여 개나 달렸다. 경력 7년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요즘엔 인터넷에서도 댓글이 홍보 효과면에서 최고"라며 "그 때문에 정치판에서도 곳곳에서 댓글을 이용하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공식 홈페이지를 갖고 있음에도 지난달 네이버·다음·파란에 별도 블로그(blog)를 개설한 것도 '댓글의 힘'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블로그는 운영자가 던지는 주제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핵심으로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미 바쁜 해외 순방 길에서도 수시로 인터넷을 드나들며 '댓글 정치'를 하고 있다.
일단 탄력이 붙으면 스스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댓글은 순식간에 스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2년 전 인터넷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소설가 귀여니(19). 당시 인터넷에 게재했던 '그 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의 소설엔 꼬리를 문 환호성 댓글이 달리면서 그를 스타 작가로 띄웠다.
하지만 그는 올해 초 낸 신간 시집 '아프리카'가 네티즌의 혹평을 받으면서, 한동안 인터넷 기피현상을 보일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네티즌들은 그가 시집을 낸 이후 그와 관련된 기사나 홈페이지마다 그의 시를 패러디한 댓글을 달아 조롱했다.
가령 그가 "명심해/하루만에 당신에게 반했다는 그 사람은/다음날 또 다른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제목 명심해) 식으로 시를 지었던 것을 패러디해 댓글을 올렸다.
'명심해/양치질은/하루에/세 번씩 (제목 '양치질')' '이천에 삼십/백에 오십/풀 옵션 완비/지하철역 5분거리/ (제목 '원 룸')'….
그는 결국 지난달 서울 강남교보문고에서 예정됐던 출판 기념 사인회까지 취소했다
댓글은 때로 진실을 파헤치고, 부조리를 바로잡기도 한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 사건의 진실이 덮일 무렵 브릭(생물학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의 젊은 과학자들이 댓글을 통해 진실 규명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유명한 사례다.
하지만 익명의 댓글은 군중심리와 어울려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일본 지진 뉴스에 '기쁘다'는 댓글을 앞다투어 다는가 하면, 취재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처리한 기사의 댓글에 바로 실명이 공개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玄宅洙) 교수는 "하루 수천만 개씩 쏟아지는 댓글이 생산적 콘텐츠로 자리잡으려면, 먼저 이용자들 내부의 자정(自淨) 기능이 확립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