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홍해(紅海) 이집트 여객선 침몰사고는 마비된 안전 의식이 불러온 후진국형 인재(人災)로 밝혀졌다.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승객을 구해야 할 선장은 가장 먼저 구명보트에 올랐고, 승무원들은 배에 불이 났는데도 항해를 강행했다. 이집트 당국은 배가 침몰한 지 10시간이 넘어서야 구조선을 보냈다.
이번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400여명 중 1000여명이 사망·실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된 사람은 4일 현재 401명에 불과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승객 1300여명 중 1000명 이상이 사망·실종된 데 비해, 승무원은 97명 중 절반에 가까운 40명이 살았다. 배에 탔던 승객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에 돈 벌러 갔던 이집트인 노동자들로 알려졌다.
◆"화재에도 항해 고집"
생존자들은 "배에 불이 났는데도 (선장과 승무원들이) 항해를 고집해 대형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이집트 선박회사 '알 살람' 소속 6650t급 여객선 '보카치오 98'호가 지난 2일 사우디 두바항(港)을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났을 때쯤 엔진실(화물칸이란 보도도 있다)에서 시커먼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고 이들은 말했다. 배는 건조된 지 35년 된 낡은 여객선.
이집트 언론에 따르면 선장은 첫 화재 보고를 받은 뒤 회항을 명령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이 화재가 진압됐다고 하자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채 기수를 목적지로 돌리도록 했다. 32㎞ 떨어진 사우디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177㎞ 떨어진 이집트로 항해하면서 불을 끄려 한 것. 승무원들이 공포에 질린 여성 승객들을 선실에 가뒀다는 증언도 나왔다. 승객들은 번지는 불길을 피해 배의 한쪽 끝으로 몰려 갔다. 엔진실에서 연기가 난 지 수시간 뒤 선체는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며 바다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승객들은 "화재 직후 선장이 항로를 되돌렸다면 대형 참사는 면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장 먼저 구명보트 올라 타"
이집트 승객 사하타 알리는 "선장이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으려 했지만 승무원들은 '괜찮다'고 말렸다. 그러나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선장은 제일 먼저 구명보트를 타고 떠났다고 생존자들은 말했다. 선장은 현재 실종된 상태. 승객들은 구명조끼와 구명보트가 턱 없이 모자랐다고 밝혔다. 한 승객은 "보트가 없어 3시간 동안 헤엄친 끝에 구조됐다. (침몰하는 배가) 마치 '타이타닉'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일부에선 선박을 불법 개조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목적지인 이집트 사파가항(港)에서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가족들은 당국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데 분노, 경찰에게 돌을 던지는 등 밤샘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집트 정부의 늑장 대응
구조활동도 문제였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군함과 해상정찰기를 보내 구조활동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집트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집트 프리깃함 4대는 배가 침몰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닿았다. 이집트인 승객들은 정부에도 분노하고 있다. 무스타파 자예드는 "일자리가 없어 고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남부 이집트의 빈곤 가정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수년간 해외에서 돈을 벌고, 배를 타고 고국을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