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년 뒤 한반도의 좌표(座標)는 남동쪽으로 365m 이동한다."
내년 1월 1일 우리나라의 국가좌표계가 '세계측지계'로 공식 전환되면 이 믿기지 않는 가설(假說)은 현실이 된다. 지난 100여년간 사용된 '동경측지계'는 지적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사라진다. 국가지리정보원이 지난 2001년 말 측량법을 개정, 올해 말까지 두 측지계를 병행 사용하되 2007년부터는 세계측지계를 사용하도록 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장소이더라도 새로운 좌표계가 표시하는 위치값이 이전과 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안기덕(安淇德·49) 국토지리정보원 서기관은 "한국 좌표의 기준인 경·위도 원점(原點)의 경우 위도는 +10초, 경도는 -8초쯤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GPS(위성항법시스템) 수신기를 가진 사람이 옛 지도에 표시된 좌표를 믿고 서울시청을 찾다간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앞 작은 길 근처를 헤맬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측지계의 전면 시행은 좌표와 관련된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전망이다. 이미 변경된 좌표의 새 지도가 제작돼 보급되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작년 9월 이후 제작되고 '세계측지계'가 표시된 지도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분·초까지 구체적 좌표가 적힌 모든 기록물, 즉 서적이나 법령, 인터넷 홈페이지 등도 '몽땅' 정정돼야 한다. 측량업계 관계자는 "일반 국민은 물론 공무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특히 외교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국제법이나 권리·의무관계를 규정한 국내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역 명소를 대표하는 지형·지물의 위치값도 예외는 아니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세워져 있는 '땅끝유래비'에는 '이곳은 한반도 최남단으로 북위 34도17분21초…'라고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 수치도 바뀌어야 한다.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외국인 어업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의 행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영해 및 접속수역법 시행령, 지적법 시행령, 수산자원보호령 등에 나타난 구체적인 위치값의 변경 여부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정확한 좌표'를 둘러싼 생존경쟁은 지금부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는 '충분'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GPS 위치 정보는 국방 등 국가 안보 측면에서 사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적 수뇌부와 병력·화력의 위치를 알아내고, 먼저 정밀 타격하느냐 아니면 당하느냐는 현대전의 승패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미사일과 무인정찰기 등 새로 개발되는 모든 첨단무기와 정보는 GPS 정보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치매노인·미아 찾기와 조난자 구출 등 생명 보호와 농업생산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경제·산업적으로 볼 때 GPS 활용시장은 앞으로 가장 성장성 높은 분야 중 하나다. 작년 미국 조사기관인 ABI 리서치는 "위치정보 활용시장이 매년 13% 이상 성장, 오는 2010년 379억31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지난 2004년 184억8800만달러의 2배나 된다.
이상정(李相禎·49) 충남대 교수는 "GPS는 군사적 목적 이외에도 항공과 해양, 자동차 내비게이션, 휴대전화 위치 기반 서비스 등 활용 범위가 너무 다양하다"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궁무진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는 바야흐로 좌표와의 전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