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추석 등 명절때 항상 떠오르는 고유의 스포츠이라면 단연 씨름이다.
일본의 스모 등 외국에도 유사한 형태의 스포츠가 많이 있지만 우리 씨름과 확연히 다른 점을 꼽자면 샅바라는 '병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럼 한국의 씨름도 처음부터 샅바를 사용했을까.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씨(인제대 교수)가 발간한 저서(씨름)를 참고로 샅바의 유래와 관련 이야기를 살펴본다.
씨름의 역사가 워낙 긴 까닭에 정확한 근거 자료를 찾기 힘들다. 다만 태고시절에는 바짓자락을 둘둘 말아 걷어 올려 샅바 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씨름이 대중화되면서 바지가 찢어지는 등 불편함을 느끼게 되자 볏짚이나 삼을 꼬아 만든 동앗줄을 다리에 감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샅은 '사타구니'로, 바(본딧말 참바)는 '볏짚이나 삼 따위로 세 가닥을 지어 굵다랗게 드린 줄'이라고 정의돼 있는 점으로 볼때 이 때부터 샅바라는 말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샅바의 재료로 현재의 광목이 사용된 것은 1920년대. 기존 참바의 재질이 거칠어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게 씨름연맹의 설명이다. 1927년 제1회 조선씨름대회에서 샅바를 공식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청-홍색 샅바로 시각화된 것은 1983년 제1회 민속씨름 천하장사대회부터다.
그런가 하면 샅바에는 숱한 일화가 얽혀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하던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씨름대회가 열리면 샅바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힘센 장사들의 정기가 서려 있는 샅바로 속곳을 해 입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황소 한 마리 값을 치를 형편이 되는 집안에서 주로 이 쟁탈전을 벌였는데, 미리 장사 후보를 매수해 놓고 밤새도록 그의 샅바를 지키는 경비작전도 허다했다고 한다.
(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