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외교를 돌아보면 '2001년 9월 11일'과 '2005년 9월 11일'이라는 두 개의 '9·11'이 큰 고비였다. 첫 번째 9·11 때까지 고이즈미 외교는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가 확실한 외교전략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 외교는 전혀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고이즈미 내각의 첫 외상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이 외무성 간부들과 대립하는 바람에 일상적인 외교조차 기능 부전에 빠져 있었다. 이런 국면을 일거에 바꾼 계기가 미국에서 발생한 9·11 동시다발 테러였다. 그 후 고이즈미 총리는 대미(對美) 지지외교를 확실히 했다.

일본의 동아시아 외교가 꽉 막혀 답답했던 상황도 9·11 이후 세계적으로 국면이 바뀌는 가운데 어느 정도 돌파가 가능했다. 이런 외교적 성과가 축적돼 그 이후의 고이즈미 외교가 어느 정도 작동하게 됐다. 그러나 2005년에는 이런 외교적 축적이 거의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하는 일본 외교가 뒤틀리면서 그런 상황이 빚어졌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일대 찬스가 작년 9·11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찾아왔었다. 그때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 등에서 방침을 바꿔 근린외교 중시를 밝혔다면, 상당한 국면전환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총선 압승을 배경으로 외교 정책의 전환이 이뤄졌으면 주변국가들의 외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주변국가들을 상대로 강한 입장에서 일본 총리로서 다양한 정상외교를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일대 찬스를 눈 뜨고 흘려 버렸다. 총선이 끝난 뒤 고이즈미 총리가 다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바람에 이제 일본의 동아시아 외교는 2001년 내각 출범 때보다 한층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총선 압승 직후와 같은 그런 좋은 찬스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스쿠니 문제에서 방침을 전환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외국에 굴복했다는 이미지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희망인 대외관계에서도 부시행정부 내에 일본을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외교에서 거의 기대를 걸지 않고 출범했던 고이즈미 정권은 결국 집권 중반기에 일궈낸 외교적 성과를 전부 탕진해 버리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나가면 좋을까. 단기적으로는 '대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 손실대책)'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상 외교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주변국들과의 정상외교가 더 이상 힘들게 된 이상, 정상외교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사태악화를 막든지, 정상외교가 가능한 여러 지역과의 관계를 가급적 좋게 이끌어가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외교전략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억지(抑止)와 방위(防衛)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의 안전보장 정책이 흔들려선 안 되지만, 동맹국과 주변국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정책체계와 상황별 대책을 짜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경우 야스쿠니 문제처럼 국제적인 '언론전(言論戰)' 속에서 치러야 하는, 승산 없는 소모전은 일본이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역사 인식문제에 대처함에 있어서도 비용 대비 효과에 착안한 전략성이 필요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국가인 일본의 국익은 체력으로 승부하는 소모전을 통해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대학원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