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저녁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한복판에 예닐곱 명이 모였다. 작년 말 이곳에서 숨진 러시아 대학생 티무르 카라차프(21)를 애도하는 자리다. “젊은 스킨헤드족(族) 10 명가량이 큰 길에서 담배를 피우던 티무르를 급습했어요. 흉기로 머리를 마구 때렸습니다. 구급차가 10분 만에 도착했지만 출혈 과다로 숨졌어요.” 친구 샤샤 카쉬코(22)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티무르는 ‘스킨헤드’ 등 러시아에서 계속 확산되는 파시즘을 반대하는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테러를 당했다.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유럽에서 유입된 과격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인 러시아의 스킨헤드는 처음에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 러시아 내 카프카스 출신의 이민족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둘렀지만, 최근엔 아프리카·중동·아시아·유럽 등 모든 외국인을 공격 목표로 삼는다. 티무르 피살 사건은 특히 스킨헤드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러시아 대학생을 노렸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컸다.

하루 전날 자리를 함께한 '안티 파시즘' 운동가 20여명은 한결같이 "스킨헤드와 파시즘을 방치하면 러시아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12월 24일, 카메룬 출신 유학생 카넴 레온이 스킨헤드의 공격으로 숨진 것을 비롯, 최근 3년간 스킨헤드에 의한 사망자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도대체 스킨헤드는 누구이고 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면도하다시피 머리를 짧게 깎은 '스킨헤드'들은 '젊은 파시스트'라고 불린다. 검은 가죽 점퍼에 군화를 즐겨 신는다. 10대 초반~20대 중반의 무직(無職) 청소년들이 주류. 이 중에서도 12~13세는 예비파, 14~16세는 행동파, 그 이상은 교육파로 구분된다. 마리나 니콜라예브나 모스크바대 교수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는 과정에서 파생된 어두운 단면이 바로 스킨헤드"라고 설명한다. 외국 자본이 러시아에 유입되면서 자신들의 몫을 외국인이 빼앗아갔다고 스킨헤드들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전체에 스킨헤드는 약 5만명. 인구 1억4000만명의 0.01%도 안 된다. 그러나 이미 1만명 가까운 조직원을 둔 스킨헤드 조직이 있는가 하면, 10~100명씩의 소규모 조직 등도 계속 확대된다. 이들은 주로 대도시 교외 비밀장소에서 격투 혹은 패싸움에 가까운 훈련을 받고, 지하철과 대로변에서 활동한다. 외국인들이 지하철 타기를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킨헤드는 "루시(고대 슬라브민족)를 제외한 다른 민족은 러시아 땅을 떠나라"고 주장하고 '하일! 히틀러'란 구호를 외쳐, '스킨헤드=파시즘'이란 등식이 나왔다.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 가사는 "우리 조국 러시아, 우리의 순결한 나라, 하치(중앙아시아 지역 민족)들로부터 너를 구원하리. 러시아인만이 사는 나라를 위해, 하치를 없애고 러시아를 구하자"로 흐른다. 이(異)민족을 몰아내고 순수 슬라브민족만으로 살자는 것이다.

스킨헤드 범죄가 가장 빈번한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인권단체들은 약 1만~1만5000명이 이곳에 있다고 말한다. 이 도시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현 러시아 정치권력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한 외국 상권(商權)의 영향력이 크고, 전반적인 경제 수준이 모스크바보다 낮아 반(反)외국인 정서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스킨헤드 활동에 대해 "인종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차례 말했다. 하원(下院)인 두마도 '반(反)극단주의 법안'을 2002년 승인했다. 그러나 스킨헤드의 범죄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여전히 경찰 발표는 대부분 "훌리건(불량배)이나 여러 세력 간 단순 패싸움"이라는 것이다.

작년 한 민간 단체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스킨헤드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39%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회학자인 로만 모길레프스키 박사는 "스킨헤드와 파시즘을 당장 저지하지 못하면, 러시아 국민의 근 70%는 이들의 범죄를 무감각하게 대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