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애써 깨우지 않아도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알림장에 숙제와 준비물을 잘 적어온다면 부모님들의 걱정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매일 해야 하는 숙제, 일기 쓰기, 학습지까지 꼬박꼬박 잘한다면 모범생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현실 속의 부모들에게는 이렇게까지 손이 안 가는 아이를 기대한다는 것이 큰 사치인 경우가 많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꾸물거리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재한이는 교육에 특별히 열의를 보인다고 알려진 동네에서 영재학원과 중학교 선행학습을 받는 아이였다. 종종 상당히 어른스러운 말을 해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학습지와 학원 숙제, 일기 쓰기를 항상 미루는 것이 큰 문제였다.
재한이 어머니는 수없이 잔소리를 하고 야단을 치는 것에도 지쳤다. 명문대를 졸업한 남편은 자신을 '극성스러운 아줌마'로 여겼다. 재한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머리가 컸는지 은근히 어머니를 무시하곤 했다. 아이 취급 받으면 펄펄 뛰면서도, 여전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꾸물거리는 것은 전혀 줄지 않았다.
클리닉을 찾아온 재한이의 하루 일과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학교와 학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기는 했지만 학원에 가기 전의 시간이나 저녁 식사 직전, 과외 선생님이 가신 뒤의 자투리 시간이 의외로 많았다. 재한이와 어머니에게 생활계획표를 주면서, 다음 날에 꼭 해야 하는 일들을 계획하게 하였다.
그리고 학원에 가기 전과 저녁 식사 전의 자투리 시간에 숙제와 학습지를 반드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하게 되면 생활계획표의 확인란에 '○'를 해주고, 핑계를 대거나 두 번 경고를 해도 5분 안에 할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확인란에 '×'표시를 하도록 하였다.
일주일에 나흘간 해야 할 일을 모두 잘해낼 경우에는, 주말에 세 시간 동안 마음껏 게임을 하거나, 좋아하는 바둑을 아버지와 두도록 상을 정하였다. 바쁜 업무를 핑계로, 아이의 교육을 모두 어머니에게 맡기고 있던 아버지에게도 퇴근 후에 생활계획표를 검사하는 책임을 맡겼다.
처음에 재한이는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느냐.'며 저항했다. 재한이 아버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한 학기 정도가 지나면서 아버지도 아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재한이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 수고한다'는 말을 하였다. 재한이도 여러 핑계를 대며 꾸물거리는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평소 준비물을 잘 챙기지 못하고 실수가 잦던 재한이의 성적이 오르고, 선생님의 칭찬을 듣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재한이 어머니는 주말에 재한이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유롭게 외출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찾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 신성웅·청심병원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