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논설위원

연초 굉장히 춥던 어느 토요일, 충북 제천 박달재 근처 산속에 혼자 산다는 최성현씨를 찾아갔다. 그의 집은 눈 쌓인 오솔길을 15분 올라가서 나왔다. 산비탈에 선 함석 지붕집이다. 헛간과 나무를 얽어 만든 정자, 이엉으로 지붕 엮은 뒷간도 있다. 생각 못했던 손님이 한 명 있었는데, 최씨 소문 듣고 찾아와 며칠 신세지고 있다는 털모자 쓴 젊은이였다. 1956년생 최씨는 대학 학부에서 축산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선 노장(老莊) 사상을 전공했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 2년 있다가 1988년 숲으로 들어갔다. 산중(山中) 생활 중간중간 도쿄에서 2년을 신문배달하며 일본말을 배웠고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3년 반을 살기도 했다. 그가 바깥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3년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라는 책을 내면서였다. 숲 속에서 살며 관찰한 것, 들여다본 것, 깨친 것을 담은 책이다. 헛간과 아궁이 앞엔 장작더미가 키만큼 쌓여 있었다. 그 장작을 때 방바닥은 지글지글 끓는다. 최씨가 하는 일은 새벽에 일어나 책 읽고 글 쓰고 번역하기, 산책하며 벌레나 새에게 말 붙이기, 명상하기, 그리고 자급자족의 농사일이다. 벌을 키우고 오디 진액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손바닥만한 논에선 한 가마쯤 쌀이 나온다. 밭에는 배추, 상추, 쑥갓, 무청, 부추, 고추, 깻잎을 심는다.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그의 농사법이다. 김매기도 하지 않고 농약이나 비료도 안 뿌린다. 밭의 주인은 풀과 벌레라는 생각에서다. 배추 밭 한 고랑은 아예 배추흰나비 애벌레 몫으로 정해놨다. 배춧잎에서 벌레가 보이는 대로 골라서 거기로 옮겨준다. 고추 밭에도 벌레들이 살 수 있는 풀밭을 따로 만들어 둔다. 풀은 벌레의 밥이자 집이 된다.

그 벌레들은 채소를 갉아먹지만 나중에 나비가 되면 나무와 풀의 가루받이를 돕는다. 만물은 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벌레와도 나눠 먹어야 건강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산길을 걷다 밤이나 도토리 같은 것을 보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준다.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일에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한번은 서울 나들이길에 자기 바짓가랑이에 주름조개풀의 씨앗들이 달라붙은 것을 보았다. 이 씨앗들이 자랄 흙과 빈터가 어디 없을까 찾아봤지만 결국 못 찾았다. 그 씨앗들은 최씨 바지에 붙어 산으로 돌아갔다. 바깥세상과 연(緣)을 끊고 사는 건 아니다. 반 평 넓이쯤 돼 보이는 태양광 집광판을 설치해 전기를 만들어낸다. 그걸로 스탠드 불빛을 밝히고 컴퓨터 작업도 한다. 전화도 있다. 뉴질랜드에 사는 딸과는 이메일 대화를 한다. 며칠을 사람 그림자도 못 보는 때도 있고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명, 세 명씩 찾아온다. 방문객은 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인 경우가 많다.

여름엔 도시 아이들을 불러 자연학교도 차린다. 작년 여름도 지역 한살림 소개로 초·중학생 6명이 와서 농사도 짓고 산도 쏘다니다 갔다. 최씨는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 곳곳에 여럿 있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임도 가져봤다는 것이다. 산속에서 가만히 움직임을 멈추고 있으면 보통 때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작은 날벌레들이 보인다고 한다. 엎드려 보면 줄기와 풀잎 사이에도 작은 동물들의 세상이 있다. 숨을 죽여보면 나무껍질 떨어지는 소리, 잎사귀 흔들리는 소리, 들쥐 기어가는 소리, 벌레가 짝 찾으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가끔은 손등이나 어깨 같은 데 나비나 잠자리가 날아와 앉아줄 때가 있다. 그것들이 자신에게 그처럼 곁을 줄 때 그게 그렇게 좋고 기쁘더라는 것이다. (한삼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