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후계 총리'를 본인이 직접 지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베 대망론'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11일 방문 중인 터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9월 자민당 총재 경선과 관련, "입후보 마감부터 투표일 사이에 (누구를 지지할지)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바람직한 차기 총리 자격에 대해서는 "새 총재 아래서 선거에 이길 수 있을지가 큰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에 비춰 고이즈미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인 아베 신조(安倍晋三·51) 관방장관을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지지율은 40% 이상이다.
지난 연말 고이즈미 총리는 관저에서 열린 오찬 자리에서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원동력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행동력이었다. 요시다 쇼인이 있었기에 (그에게서 배운)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가 나왔다"고 말했다. 자신을 쇼인, 아베를 신사쿠에 비유하면서 두 사람 관계를 '스승과 제자'로 표현한 것이다. 며칠 후 고이즈미 총리는 또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어려움에 직면해 도망치면 안 된다"며 아베의 출마를 촉구했었다.
아베 장관은 일본 정계에서 보기 드문 명문가 출신이다.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이뤄낸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명외상으로 불린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후손이다. 아베 장관은 정치 목표로 '보수 재구축'을 내걸고 있다. 외교 안보 교육 등 기본정책에서 자민당이 냉전시대에 잃어버린 '보수정당다움'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5선으로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그가 차기 총리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 직후 터져나온 납치피해 가족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아베 장관은 "총리가 되는 것은 천명(天命)"이라며 몸을 한껏 낮춰왔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길로 산 정상에 오르겠다", "인생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다"면서 서서히 의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차기 일본 총리가 될 경우 한·일 관계는 "고이즈미 총리 때보다 잘 될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말한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는 총리의 책무"라고 공언하는가 하면, 역사왜곡 교과서 보급을 지원해왔다. 반면 친한파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국을 상당히 배려하는 편"이라는 평가도 있다.
(도쿄=정권현특파원 khj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