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딸을 며느리로 삼으려는 내용은 한국 정서에 너무 안 맞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시청률 50% 넘는다는 드라마도 거의 안 봤는데 '하늘이시여'는 기다려져요. 왕모·자경 너무 예쁘고 잘되는 모습 보고 싶어요. 제 가슴, 아직도 뛰고 있네요."
최근 시청률 25%를 돌파한 SBS 주말극 '하늘이시여' 인터넷 게시판은 늘 시끌벅적하다. 지영선(한혜숙)이 친딸 이자경(윤정희)을 기른 아들 구왕모(이태곤)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설정은 '선례(先例)'를 찾기 힘들 만큼 엽기적. 하지만 시청자들은 께적지근한 심경을 한 구석에 꾹꾹 눌러담고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에 온 정신을 쏟는다.
일상의 세밀한 묘사로 현실감을 살려내 '부박(浮薄)'한 기둥 줄거리에 탄력을 주는 '임성한'식 대본에, 낯선 신인들의 예상 밖 호연이 날개가 됐다. 그중, 모든 관계의 교차점에 버티고 선 주인공 윤정희(25)의 여린 듯 하면서 강단있는 연기가 도드라진다.
"야외 촬영을 하면, 지켜보던 아주머니들이 제 손을 꼭 잡고는 그래요. '언제 친엄마랑 정식으로 만나요, 아유 불쌍해', '왕모랑 결혼은 꼭 해야지'. 드라마 속 자경이를 아끼는 분이 참 많죠. 물론 그게 연기자 윤정희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되려면 좀 더 시간이 있어야겠지만…."
11일 밤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 촬영 중 잠시 짬을 내 소속사 사무실에 돌아온 그의 눈꺼풀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4일째 하루 1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때로 질문을 못 알아들은 듯, 허공에 턱 멈춰 선 눈길. '충격'이 필요했다. "발음은 왜 그래요?"
"아~, 집안 내력이에요. 혀가 짧은 건 아니고 집에서 편하게 말하던 습관이 굳어졌죠. 사실 발음에 콤플렉스가 심해서 긴장하면 말도 잘 안 나오고 그랬는데, 이제 나만의 장점이라고 여기니까 편해졌어요.". 말 끝부분이 코 뒤에서 맴도는 듯한 그의 불분명한 발음은 한때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개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알고 보니, 발음은 항상 그의 발목을 잡는 '덫'이었다. "전 소속사에서 '너는 발음이 그래서 연기는 안 되니까 CF나 찍으라'고 했었다"며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아버린 셈이었다"고 했다. 작년 초, 연기자의 꿈을 접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혹시나' 응시했던 '하늘이시여' 오디션에서 단아한 분위기를 인정받아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극중, 자경은 '순둥이' 또는 '청순가련'의 여인. 그래도 억울한 상황이 오면 자신을 '폭발'시킬 줄 안다. 그런데 현실의 윤정희는 좀 더 심하다. "자경이는 참다가 참다가 결국 한 번쯤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지만, 저는 계속 참기만 하는 게 다르다"며 고개를 푹 숙인다. 불규칙한 스케줄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이야기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위궤양까지 생겼지만, "아프다"는 말이 안 나와 병을 키웠을 정도. "배가 아파도 촬영이 있으면 당연히 참고 버텨야 하는 것으로 알았어요. 원래 잔병치레 안 하는 건강체질인데…."
경기도 안양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4남매 중 셋째로 구김살 없이 자라난 그가 자경이를 그려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픔이 많고 사랑이 그리운 캐릭터라 절제된 연기가 힘들었다. 2주간 한혜숙 선생님 댁에서 3~4시간씩 집중적으로 연기훈련을 받은 게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시원한 발성을 위해 2년째 판소리를 배우고 있고, 발음 교정을 위해 대본을 혼자 읽을 때는 늘 입에 연필 또는 코르크 마개를 문다. "대학(수원여대)에서 연기를 전공하고도 어느 한쪽 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주변인'의 두려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고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는 그는 우선, 작은 '보상'을 받은 셈. 떠오르는 '하늘이시여'의 시청률은 2006년 말 더 큰 선물을 그에게 안겨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