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각종 무기도입 및 군수조달 업무를 총괄할 방위사업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본 군사 마니아들은 깜짝 놀랐다. 주변국의 민감한 반응을 초래할 수 있는 3500t급 차기 잠수함(SSX), 한국형 전투기(KFX), 정찰위성 등을 포함, 256개 무기도입 계획의 예산, 기간, 현 상태 등이 홈페이지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사항이 실수로 게재된 것인가' '방위사업청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과감히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네티즌들 사이에 교차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무기도입 계획들은 네티즌들 사이에 핫뉴스가 돼 급속히 유포됐다.
그러나 이 사항들은 방위사업청이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심하고 화끈하게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3일 오후에야 이 사실을 알고 이튿날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비밀사항이 사흘 동안 북한이나 중국·일본 군 관계자들도 볼 수 있는 인터넷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던 셈이다.
그 뒤 언론에서 비밀유출 문제를 제기하자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미 알려졌던 사항이고 실무자의 실수"라며 '별것 아닌 일'처럼 해명하기 바빴다. 그러나 기무사와 국정원 합동조사 결과 이번 사안은 '별것 아닌 일'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256건 중 66%에 달하는 160여 건이 3급 비밀 또는 대외비로 판명된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11일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강조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 발족 과정과 현 상황을 보면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방대한 방위사업청 조직의 보안업무 등 감시와 통제를 누가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다.
방위사업청은 국방부와 육·해·공군, 국방조달본부 등 군내 8개 기관에 분산된 무기 획득 및 방산, 군수조달 업무의 조직과 기능을 통폐합한 거대 기구다. 이와 관련된 수만 건 이상의 군사기밀을 취급하게 된다. 보통 군기관 보안업무는 기무사가 맡지만 방위사업청에는 공무원과 군인이 섞여 있기 때문에 기무사와 국정원이 나눠서 맡도록 돼 있다. 방위사업청 출범 열흘이 넘었지만 두 기관의 법적인 활동근거와 영역 등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아 또 다른 보안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실정이다. 이들 기관이 '감시'해야 할 방위사업청 직원은 공무원 807명, 연구원 495명, 군인 908명 등 2210명에 달한다.
군 주변에선 이 밖에도 지나친 권한 집중, 방대한 조직 규모와 관리, 방위사업 정책을 심의하기 위한 방위사업위원회 구성, 민간 전문가 참여 문제 등 언제든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폭발물'들이 널려 있다고 우려한다.
기밀유출 사건 파문 속에 거함(巨艦) 방위사업청은 닻을 올리고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김정일 초대 방위사업청장은 "일부에선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있었지만 방위사업청이라는 어린아이가 이제 막 탄생했다"며 "이 어린이가 참되고 바르게 클 수 있도록 보모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오는 5월 이뤄질 1조8800억원 규모의 공군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 기종선정은 김 청장 약속의 이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