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데뷔 무대에 오른 '88올림픽 굴렁쇠 소년' 윤태웅은 아직 배우가 아니었다. '19 그리고 80'(연출 강영걸)이 개막한 1월 9일, 19세 청년 해롤드(윤태웅)는 대사와 감정이 갈라져 있었고, 둔하게 움직였고, 배역의 호흡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는 데 싫증난 청년 해롤드와,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 모드(박정자)의 만남과 사랑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극을 굴리는 두 바퀴 중 하나가 삐걱거리며 불안한 소음을 토해냈다.
친구가 없는 해롤드는 쓰레기 하치장이나 폐차장을 어슬렁거리고, 걸핏하면 장난 삼아 자살을 시도한다. 수다스러운 어머니는 이제 목을 매단 해롤드를 봐도 눈도 꿈쩍 않을 만큼 죽음에 둔감해졌다. 정에 굶주린 해롤드는 "꽃이 다 다른 것처럼 너도 다른 사람도 다 특별하다"고 말하는 80세 모드에게 끌린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청년은 자꾸만 끝을 동경하고 할머니는 끝에서도 시작을 준비한다. "세상에 진정한 임자가 어디 있냐"며 남의 물건을 가져다 쓰는 모드. '매일 새로운 걸 해보자'가 그의 좌우명이다. 모드는 해가 지평선에 떨어질 때 번지는 노을을 보고 말한다. "난 아름다움을 보고 울어. 그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야."
쭈글쭈글 할머니의 가면을 뒤집어쓴 박정자는 빈 공간을 장악하며 연극을 구했다.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툭 풀어놓는 것 같은 독특한 화법이 깜찍해 보이기까지 했다. 윤태웅은 극의 끄트머리로 갈수록 나아졌다. 그러나 발성과 시선 처리, 걸음걸이부터 불안해 관객을 내내 긴장시켰다.
배우가 되기란 이토록 어렵다. 첫날 무대엔 우울과 자포자기, 반항으로 뒤범벅된 해롤드가 없었다. 쾌활하고 낭만적으로 길게 몸을 던지는 해롤드도 없었다. 처음부터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윤태웅이 얼마나 빨리 극중 감정 진폭과 변화를 몸에 익히느냐,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이 연극의 관람 포인트다. 2월 19일까지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 1만5000~5만원. (02)569-0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