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은 지 하도 오래 되어 잊고 있었던 시나리오 '작업의 정석'이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됐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머리는 절대 아니었던, 그렇다고 뭐 다른 데 특출난 기량을 발휘하는 머리는 더더욱 아니었던 나는 참고서 제목에 꼭 껴주는 '정석'이란 단어가 괜히 선고(宣告)같고 협박처럼만 느껴졌다.
작업이라~
정석이라~
그걸 쓴 필자니까 연애에 능통하고, 그 기술이야 화수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터! 주변에 어떻게 눈길 한 번만이라도 받으려는 여인들의 마지막 번호표가 187번이니….
하지만 삶은 조금은 잔혹한 다큐멘터리여서 최근 과로로 2주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동안 병실을 찾아준 여인이라곤 '하늘의 말씀'을 전하러 온 미소가 고우신 두 분의 전도사님이 전부였다.(특히 한 분의 인상은 어찌나 자애로우시던지 '어머니~' 하고 와락 안겨 하염없이 병중의 서러움을 토하고 싶을 정도였다)
2004년 MBC에 소리 소문 없이 방영되었던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판타지 시트콤이 있었다.
뚱뚱한 소녀가 우연한 기회에 마법의 샴푸를 손에 넣게 되고 그 샴푸로 머릴 감으면 4시간 동안 완전 고마운 미녀가 되어주신다는 내용. 미취학 아동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이 프로그램의 결말을 나는 갓 쪄낸 호빵 속살처럼 말랑말랑하게 매듭지었다.
'주인공 최모두(조정린 분)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과감하게 샴푸를 버리며 세상과 당당히 맞서 싸워 나간다…'는 뭐 요런 거였다.
하지만, 이제서야 고백하자면 영화 '작업의 정석'은 '해리포터'나 '킹콩'류, 혹은 '두근두근'류의 판타지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작업의 정석'을 쓴 작가로서, 그나마 코딱지만큼이라도 자료조사란 걸 한 게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2006년판 작업의 정석'을 써 보겠다.
하나,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남들이 지나가다가도 한번 더 돌아보고 싶을 만큼 멀쩡하게 생겨주시라.
둘, 유전자 전수의 기회를 놓쳤다고 포기 말라! 미다스급의 성형외과 의사를 부모처럼 섬겨라.
셋, 일수를 찍든 신체포기 각서를 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제차를 장만하라!
그 외에도 잔기술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 세 가지만 갖춰지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류의 복장 터지는 소리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슬프고 슬프지만 2006년판 작업의 정석은 그렇다.
(방송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