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혀 절대 안 짧아요. 전혀 아니에요. 후시(後時) 녹음할 때도 문제 없었구요."
권상우는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대사 처리가 좀 아쉬웠다는 말에 그는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권상우에게 이번 영화는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스토리'보다는 '그림'으로 승부하는 액션 누아르 장르 한계상 시나리오가 옹골차지 않지만, 권상우의 몸을 내던진 리얼 액션만은 스크린에서 빛난다. 대역 없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복판을 미친 듯 질주하고,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린다. 분노로 터질 듯한 눈망울과 악에 받친 절규에도 '노력'이 엿보인다. '화산고' '말죽거리 잔혹사'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 경쾌한 학원물을 거치며 굳어져버린 '건달기 붙은 고교생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은 배우의 강렬한 열망이 배어 있기에 가능한 연기다.
"올해로 만 서른이에요. 동안(童顔)이긴 해도, 매일 고교생 역할만 할 순 없잖아요. 이번 영화 통해서 성인 배우로 인정 받고 싶어요." 까만 니트 모자를 푹 눌러쓰고, 뿔테 안경을 걸친 권상우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본다. 영화 내내 뿜어내던 맹독한 야성은 어디서도 묻어나지 않는다. 얼굴은 손에 든 우유만큼 창백하고, 조곤조곤 내뱉는 음성은 바깥의 소음에 간간이 묻힐 만큼 나직하다. 이런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라도 남들은 돈 주고도 먹기 싫다는 나이를, 권상우는 빨리 먹고 싶다.
권상우가 영화 출연을 결정한 것은 지난 2004년 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개봉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끝낸 뒤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변신을 꾀할 수 있는 후속작을 고민하던 중 시나리오를 봤고, 거뭇한 남자들의 선 굵은 이야기에 첫 눈에 반했다. 연성(軟性) 코미디에서 경성(硬性) 액션으로의 급선회, 적응에 힘들지는 않았을까. "영화 장르는 관객의 입장에서 나누는 것 같습니다. 연기하는 사람에게는 학원물이나 성인물이나 큰 차이가 없어요."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물에 대해서도 후회는 없다는 말이다.
갑자기 진동 소리가 들린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자신이 광고 모델로 출연했던 일명 '권상우폰'이다. 당연히 공짜로 받았을 줄 알았는데, 권상우는 '돈 주고 산 것'이라고 애써 방점을 찍었다.
"어, 그래? '왕의 남자' 잡아야지." '야수' 예매율이 좋다는 걸 알려주려 교사인 친형이 건 전화였다. 경쟁작인 '왕의 남자' 성적도 말해준 모양이다. "그래도 챙겨주는 건 가족밖에 없다니까요.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왕의 남자' 잘 돼서 좋아요. '태풍' '청연' 같이 돈 많이 들어간 화제작보다 주목 못 받았던 영화 잘 되면 좋잖아요. 너무 잘나가서 우리 영화에까지 영향 미치는 거 보니 걱정되긴 하지만요."
권상우는 수시로 옆에 있던 스태프에게 예매 성적을 물었다. "△△무비 몇 퍼센트야? ○○링크는 어떻게 됐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톱스타도 흥행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