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br><a href=http://search.chosun.com/man/search_man.asp?keyword=강규형 target=new><img src=http://image.chosun.com/common/200410/sys/ico_relation.gif border="0"> 인물DB 프로필 검색<

60~70년대 한국의 축구 열기는 지금 못지않았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번번이 호주·이스라엘·중동 국가들, 심지어는 말레이시아와 같은 팀들에 져서 월드컵이나 올림픽 본선 진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정신적 후유증은 컸다.

한 유명한 체육전문기자는 좌절할 때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의 아리아 "우리 다시 시작해요"를 인용하곤 했다.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이제 어떡하나요?/ …지금까지는 희망에 가득 찼었죠/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서 말해줘요/ 이건 그저 꿈이었다고/ 오!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지금 우리나라는 '황우석' 사태로 집단적인 허무감에 빠졌다. 필자는 '황우석 신드롬'이 극(極)에 달했던 지난 6월 초 생명공학 발전에 병행해야 하는 생명윤리와 국제기준의 준수에 관한 우려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사태 전개는 그러한 우려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의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은 확실해진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한국인들에 의해 그 연구의 문제점들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이 '황우석'에 열광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연구의 성공이 가져올 국가적 위신의 상승과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었다. 약소국의 설움을 당해본 경험 때문인지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국가 위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새로운 국가적 성장 동력과 부(富)를 가져다 줄 것처럼 보였던 생명공학 앞에서 우리는 벌거벗은 욕망을 노출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는 과도한 성과·속도 지상주의, 왜곡된 민족주의, 땅에 떨어진 윤리의식 등 우리 사회가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을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그리고 코리아라는 브랜드는 큰 상처를 입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기본이 안 된 나라라는 것이 드러났다.

삼풍과 성수대교 붕괴가 물질적 측면의 문제를 노정했다면 '황우석 사태'는 정신적 수준에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개발시대에 빨리, 거대하게 만드는 것에 집착해 적법한 과정과 내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건물이 무너졌는데, 이러한 습성이 탈(脫)산업화 시대까지 온존돼 이제는 정신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전거타기 신드롬'을 연상시킨다. 이는 페달을 계속 밟아야만 넘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페달을 밟아대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러한 오류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모르고 자기파멸의 길을 가기도 한다.

그동안 숨차게 달려온 한국 사회는 이제 잠깐 자전거를 세우고 숨도 돌리고 뒤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에 대해 성찰해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2005년 12월 끝자락에 다시 들어보는 '우리 다시 시작해요' 노래 가사는 지금 우리의 심정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지금 일어나는 악몽들이 그저 꿈이기만을 바라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냉엄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70년대 아무런 희망이 없어보이던 한국 축구는 결국 우뚝 일어섰다. 그래!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