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世卿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

일본의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명작인 '나생문(羅生門)'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한 강간 살인 사건의 당사자들인 4명의 상호 모순적인 증언들을 그려낸 것으로,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과오를 숨기려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능,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객관적 사실들을 주관화하는 인간의 기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를 둘러싼 조선일보의 보도는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진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영화 '나생문'의 당사자들처럼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서로 다른 주장들을 펴는 황우석 교수, 노성일 원장, 김선종 연구원 등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 매체와 속보 경쟁이라도 하듯 여과 없이 보도했다는 느낌이다.

물론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검증은 언론보다는 과학계의 몫이다. 그 이유는 과학 분야의 비전문인으로 구성된 언론계가 과학적 사실을 검증하려다가 식견이나 시각의 차이로 사실을 왜곡하여 진실을 오히려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검증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학계의 몫으로 하고 언론은 제기된 의혹의 핵심은 무엇이며 어떠한 방향으로 의혹을 풀어가야 하는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줄기세포 진위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조선일보는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 독자들의 주장과 시각을 보도의 주요 논점으로 삼았다. 물론 독자들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지만 중요한 사안일수록 전문적인 식견을 토대로 한 균형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데 예를 들어 PD수첩이 방영된 이후 제기된 황우석 교수 연구에 대한 반응을 보도함에 있어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전문적인 사이트의 반응을 보도하기 보다는 일반 네티즌들의 감정적인 거친 반응들을 중점적으로 보도하였다.

또 YTN 보도로 PD수첩 팀이 취재윤리조항을 어겼다고 밝혀지자, 과학적 진실 규명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줄기세포 진위 보도를 국익 수호 차원의 논점으로 변화시켰다. 미국의 섀튼 교수가 특허권 지분의 50%를 요구했었으며, 미국에 파견된 연구원이 영주권을 신청하려 한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과학적 진실의 규명과 생명윤리의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진행을 더디게 했다. 또한 노성일 원장의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 이후 노성일 원장과 황우석 교수의 상반되는 주장들을 보도함에 있어서 과학적 사실 검증을 위한 향후 대책에 대해 제안하기보다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에 집중하였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와 관련된 쟁점들은 '연구원의 불법 난자제공'이라는 생명윤리의 문제, '줄기세포의 진위'라는 과학적 사실 문제, 그리고 초기에 'PD수첩' 문제로 불거진 취재윤리의 문제 등 다양한 차원이 얽혀 있다. 이러한 각 사안들을 냉정하게 구분하여 객관적으로 취재한 사실들을 가지고 보도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줄기세포 진위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 조선일보는 그동안의 보도에 대해 자체 평가를 하여야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단 하루라도 줄기세포 의혹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고 특별탐사팀을 구성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가? 줄기세포 진위 보도의 논점을 설정함에 있어 특정 집단이나 여론에 동조하지는 않았는가? 사실에 근거한 보도 비율이 얼마나 되었으며, 취재 과정에서 오류나 윤리적 문제는 없었는가? 줄기세포 진위와 관련된 보도의 전 과정에 대해 평가하여 그동안의 보도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심도 있는 정보를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