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국제부장

지난 13일 브라질의 재무장관 안토니오 팔로치는 대담한 선언을 했다. "향후 2년간 갚기로 돼 있는 IMF 부채 155억달러를 연내에 조기 상환하겠다. 이로써 우리는 9억달러의 이자를 절감하게 됐다. 외국 투자자들은 브라질의 강력한 (외채상환) 정책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발표가 나오자 이웃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츠너(55세) 대통령도 이틀 뒤 "IMF차관 잔액을 올 연말까지 조기 상환하겠다"고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IMF부채를 갚는다고 하지만 두 나라는 1000억달러(아르헨티나)와 4300억달러(브라질)의 큰 빚을 여전히 지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IMF 결별 선언'을 놓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의 평가는 달랐다. 이 잡지는 20일 인터넷판에서 "이 조치로 브라질은 강력한 재정상태를, 아르헨티나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드러냈다"고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브라질은 '자기 실력'에 맞는 조치를, 아르헨티나는 '실력에 넘치는 조치'를 했다는 지적이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60세) 대통령이 이끄는 브라질 정부가 IMF 부채를 조기상환하기로 한 것에 대해 논란이 없지 않다. 야당은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을 덮기 위한 것", "내년 10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용"이라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이 외채상환 능력을 갖게 된 것은 긴축재정과 고금리정책 덕분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한다. 주목할 것은 이 두 가지 정책이 그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는 물론 기업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정책이란 점이다. 더구나 룰라 자신의 인생역정과 그가 속한 노동자당(PT)의 노선으로 볼 때, 이러한 선택은 파격적이다.

룰라 대통령은 밑바닥에서 출발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어릴 때 세탁소 점원, 전화교환원, 구두닦이 등 안해 본 게 없었다. 1989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당의 대선 후보가 됐을 때 룰라가 내건 강령은 이런 것이었다. "대농장을 해체해 1200만명의 땅 없는 농민에게 혜택을 주겠다.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포기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2002년 말 그가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을 때, 세계는 브라질을 우려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룰라가 보여준 정책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야당후보 시절 연금개혁을 줄기차게 반대한 그는 대통령이 되자 노동자 복지혜택을 줄이는 연금 수술을 단행했다. '우리끼리 산다'는 식의 당 노선과 반대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과 만나 수출확대에 합의하고, 미국에서 투자유치 로드쇼를 벌였다. 석 달 걸리던 기업설립 절차를 인터넷으로 3일이면 끝나게 했고, 중소기업 수출세도 면제해 주었다. 덕분에 올해 440억달러의 무역흑자가 예상된다.

주목할 점은 그가 국내의 반발에 인기영합적인 '당근 정책'을 내놓기보다 설득력 있는 논리와 협상으로 이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가령 연금삭감에 노동자당의 반발이 거세자, 그는 "그대로 두면 재정이 파탄난다"면서 "처자가 있는 가장(家長)이 되면 총각 때와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맞받았다. '변절자'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공부채 축소를 위한 '고통분담'을 호소해 관철시켰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최근 "브라질에서 책임 있는 재정정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룰라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또 지지자들의 이기적 요구에 연연하지 않는 룰라의 실천적 개혁은, '말로만 하는 개혁'과 달리, 주목받을 만하다.

(지해범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