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만화가

만화가 이현세(49)씨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웃음도 잦아졌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제 꼬리를 내릴 시기 아니냐"며 그는 웃지만, 이유는 또 있다. 20년 만에 어린이 만화로 돌아온 것이다. 역사만화서 '한국사 바로 보기'(녹색지팡이)를 이달 초 10권으로 완간한 그는, "'아마겟돈'을 발표한 뒤 처음 낸 어린이 책이며, 나의 첫 컬러 만화"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만날 야한 것만 그리다 역사만화 그렸더니 재미있네요.(웃음) 재판까지 갔던 '천국의 신화' 그리면서 5~6년간 모았던 자료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용기를 내봤습니다."

선사시대부터 1945년 광복까지 망라한 '한국사 바로보기'는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이었던 까치·엄지·동탁·두산이 함께 우리 역사의 주요한 현장들로 탐험을 떠나는 내용. 한국역사연구회와 공동 작업한 이 시리즈는 과장하고 축소하는 만화 고유의 기법 대신 사실적(寫實的)인 극화체를 선택해 역사만화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씨는 "너무 오랜만에 (아이들 그림을) 그려서인지 애를 많이 먹었다"며 엄살을 부렸다. "눈높이 맞추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출판사는 '잔인하다' '섬뜩하다' 하면서 자체 심의를 얼마나 까다롭게 하던지…. 이방원이 정몽주를 철퇴로 죽이는 장면에서도 선죽교의 흥건한 핏자국이 말끔히 삭제됐어요."

그래도 끝까지 고집한 것이 '독수리'다. "선사시대를 다루는 첫 권, 첫 장면이 고인돌 위에 독수리떼가 눈을 부라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에요. 섬뜩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건 양보할 수 없었어요. 한국사에서 독수리는 민족의 기상이며 희망을 상징하니까요."

대신 아이들 정서를 위해 트레이드 마크인 날카롭고 강한 직선을 버렸다. 펜 대신 사인펜을 100% 사용했어요. 사인펜은 얘기하다 침이 튀어도 번지는 속성이 있어 까다롭지만,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거든요."

다시 시작한 어린이 만화를 역사책으로 고른 데에는 자못 깊은 뜻이 있다.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 역사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하고 싶었어요. 한국민의 대부분이, 위대했던 고조선 역사를 까마득한 전설이라고 여기는 반면, 동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진시황의 한나라는 확실한 역사라고 믿지 않습니까?"

이현세씨는 모든 매체의 만화연재가 끝나는 내년 3월부터 펜을 잠시 놓을 계획이다. "이제까지 뭘 하며 산 건지 돌아보고 싶어서요. 만화 그리기 시작해 한 달도 쉬어본 적 없어요. 다들 '잘했다' 하는데 마누라만 한숨 쉬어요. 그래서 엄포를 놨죠. 평생 먹여 살렸으니 1년만 좀 먹여 살려달라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