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甲植·사회부 차장대우

글 쓰는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기자들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불문율(不文律)이 생긴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를 졸업한 독자에게 수준을 맞추라."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전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황우석(黃禹錫) 교수 파문에서 이 보도준칙은 무너지고 말았다.

"복제 배아줄기세포 2번·3번에 대한 생쥐 주입 실험을 하고 '테라토마(teratoma)'가 발생한 사진을 찍어 황 교수에게 전달했고" "2번·3번 사진을 똑같이 많이 찍어서 4번 그림을 만든 게 아니냐"….

이 글은 본지 일선기자들이 데스크에게 보내온 초고(草稿)의 일부다. 자연과학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사람을 제외한 일반 독자 중 이 글을 선뜻 이해할 수 있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최근 황 교수 관련 보도는 바로 이런 난해한 내용들과의 고통스러운 전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황 교수 파문은 '과학'에서 '신파(新派)' 내지 '추리(推理)',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무협(武俠)'이 뒤범벅된 복합 영역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고 있다. 정작 이성적인 토론의 장이 돼야 할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더니 계속 그쪽으로 질주하는 형국이다.

주연 격인 황우석 교수와 미국에 파견된 연구원들에게는 절대 선(善)의 이미지가, 반대편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악(惡)의 화신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이번 파문을 '보수 대 진보', 혹은 '순교자 대 박해자' 같은 이미지로 확대 분식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상황 논리도 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대통령이 불쑥불쑥 끼어든다거나, 국가정보원이 입에 오르내리고, 한국의 상황을 즐기려는 듯한 해외 과학저널과 외신의 보도도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 살리기'류(類)의 무조건적인 움직임은 바로 이에 대한 반(反)작용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파문은 여러 가지 여운도 만만치 않게 남길 전망이다. 공격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에게는 "세상이 바뀐다"고 믿을 만한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속편(續篇)'이라는 이름 아래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마치 피라미드에 새겨진 상형문자(象形文字)처럼 여러 가지 함의(含意)로 가득찬 대통령의 글은 또 뭔가. 그 글은 되씹어 볼수록 묘한 측면이 여러 군데 있다.

때문에 이번 사태는 '과학'으로 시작해 '과학'으로 끝나야 옳다.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학계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주장해 왔다. 그렇지만 입으로 외치는 것과 실제가 다른 이중성이 나라를 뒤덮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그 끝은 무엇일까? 범위를 좁히자면 세계 최초를 향해 밤을 하얗게 밝히던 황우석 교수팀, 황 교수팀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청소년들, 그리고 더 범위를 넓히자면 과학계를 포함한 한국의 아카데미즘은 신파·추리·무협의 영역으로 전락해 당분간 회생(回生) 불능의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딱히 집어 누가 이렇게 상황을 변질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과학이 미스터리물로 변하는 사이 덕을 본 쪽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보잘것없는 과학지식을 상기시키느라 며칠 동안 머리에 '쥐'가 나던 보도 매체들은 상황이 반전되는 순간 쾌재를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文甲植·사회부 차장대우 gsmo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