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의 심장에서 몇 발자국 비껴 섰다. 태풍의 눈 속에선 미처 몰랐던 치열한 맹목과 뜨거운 부딪침을 비로소 관조(觀照)할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된 그런 행복한 나이가 된 것이다.
만화가 강도하(36)는 '위대한 캣츠비'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고양이와 개로 의인화된 그의 20대 주인공들은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라 좌절과 비애로 가득찬 파토스 속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런 청춘의 기억을 또록또록 되살려 인터넷에 연재했을 때, 20대, 30대 독자들은 당혹하면서도 열광했고, 그 열광은 이번 '대한민국 만화대상'과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 선정으로 이어졌다. 내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제작사 인디컴(대표 김태영)이 일찌감치 '위대한 캣츠비'에 찜을 했다.
"그 시기를 겪으면서 누구나 느꼈을 그런 감정들을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양옥집. 2층. 2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원고 마감을 위해 꼬박 밤을 새고 나온 그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미디어다음에 연재됐던 '위대한 캣츠비'는 26세의 '백수'인 주인공 캣츠비를 중심으로 동년배 남녀 주인공들의 어긋난 사랑을 다룬 장편만화. 무대는 철거가 진행 중인 판자촌. 만화적 표현이 두드러진 인물과 대조적으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 판자촌은 이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판자촌은 '청춘'이란 개념과 닮아 있어요. 곧 철거되고 잊혀질 운명에 처해 있고, 그 속에선 항상 고달프다는 것이죠." 젊은 주인공들은 세상살이든 연애든 모든 것에 '초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제목에는 '위대한'이란 말을 썼다. 결코 반어적 표현이 아니다.
소시민의 벅찬 판단이나 감정,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이야말로 이 시대에는 위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피해 갈 것은 알아서 피해 갈 수 있지요. 하지만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부딪치는 게 청춘의 속성입니다."
독자들의 반응도 연령대마다 달랐다. 일부 20대들은 연애물로 생각하고 '누구를 누구와 맺어 주세요'라고 메일을 보내는가 하면, 30대 이상 독자들 중엔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인식한 사람들이 많았다.
강씨의 본명은 강성수다. 인터넷에 작업하면서 새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인 1987년 '보물섬' 공모전으로 데뷔했고, 인디 활동을 거쳐 '슬픈나라 비통도시' '스위트 홈' 등의 작품을 낸 중견 작가다.
TV드라마로도 히트친 만화 '풀하우스'의 원수연씨가 부인. "그쪽은 순정만화로 장르가 달라요, 작업실도 따로 있어요." 따로? 강씨의 작업실이 있는 양옥집에 살림집이 있고, 부인 원씨의 작업실은 근처 다른 집에 차렸다. 그래서 세살, 두살 두 아이와 접하는 시간은 강씨가 더 많다.
"출판만화 시장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어요. 웹 상에 연재를 하다보니, 새로운 실험 요소가 많아요.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만화를 해야죠." 웹에 띄운 '위대한 캣츠비'는 컴퓨터 스크롤(scroll)에 걸맞게 상하로 이어진 편집과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시각적인 표현, 정밀한 구도와 시간의 역순(逆順) 등 인터넷 환경에 맞는 기법을 동원했다.
동영상과 사운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기존의 만화 양식을 지킬 것이냐 한 걸음 더 나가 애니메이션과의 경계선을 허물 것인가, 그에겐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