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만세'의 대만 영화감독 차이밍량(蔡明亮)이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다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울어버린 일이 있다. 온몸으로 영화를 찍고 그 덕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까지 받았지만 여기저기서 돈 끌어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상영하는 일이 너무나 힘겹다는 얘기를 하면서였다. 그는 "영화 '거기 지금 몇 시니?'를 만든 후 거리에 나가 티켓을 팔 때는 사탕장수가 된 것 같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차이밍량은 "내가 택한 소재는 영화화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데도 그런 선택을 하는 나 자신을 참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감독을 꼽을 때면 반드시 들어가는 사람이다. 비평에선 찬사를 받으면서도 관객 호응이 적어 다음 작품을 기약하기 힘든 건 작가 감독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이긴 하다.
▶'라쇼몬'으로 1951년 베니스영화제 대상과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따내며 일본 영화를 세계에 알린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도 1971년 돈 때문에 영화를 마음대로 찍을 수 없게 되자 집 목욕탕에서 자살하려 한 적이 있다. 일본 영화계가 높은 제작비만큼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기피하자 그는 프랑스와 미국 자본을 끌어들여 '란(亂)' '꿈(夢)'을 찍었다. 만년의 구로사와에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안겨준 '가케무샤(影武者)'는 스필버그, 코폴라, 루카스 등 그에 경배하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나서 폭스사(社)에 제작을 떠맡긴 영화였다.
▶임권택 감독의 새 영화 '천년학'이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영화가 젊은 관객의 발길을 불러모을 만한 스타 배우를 잡지 못하자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고, 제작비 없이 영화를 만들 길이 없는 제작사가 손을 든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천년학'은 '서편제'의 속편이며, 임 감독이 찍는 100번째 영화다.
▶임 감독은 칸영화제 감독상,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을 받았으며 '서편제'로 관객 100만명 시대를 연 '국민 감독'이다. 외국 대학에는 '임권택 강좌'가 생겼고, 유명 영화제에선 '임권택 회고전'을 연다. 아무리 '대박'에 목을 매고 돈에 혼이 팔린 시대라지만 한국 영화계가 그런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를 이렇게까지 푸대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세계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것은 돈 되는 상업영화 수백편이 아니라 임 감독 같은 거장의 영화 몇 편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