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인체는 소우주(小宇宙)'라는 동양 사상뿐만 아니라 현대의학의 진화론(進化論)에서도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대구 경북에서도 내륙 지방과 동해안 해변 지역은 기후와 음식 등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과거 교통수단이 빈약했던 시절 내륙에서는 곡류가 비교적 풍부한 반면 해변에서는 자연스럽게 해산물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은 그 성질이 차가운 종류가 많다. 특히 조개·게 등의 갑각류는 차가운 성질이 강해 열기(熱氣)를 식혀주는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대구와 같은 내륙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구경하기 어려웠고, 이런 환경이 대구의 독특한 화기(火氣)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겨울 추위가 닥치면서 지금 동해에서는 한창 물오른 대게 잡이가 시작된다. 대게는 다리가 대나무같이 곧게 쭉쭉 뻗었다고 해서 죽해(竹蟹), 마디가 여섯 개라 하여 죽육촌어(竹六寸魚) 등으로 불리었다. 한의학에서 대게는 가슴에 열이 몰려 생기는 답답한 증상을 풀어 주고, 위기(胃氣)를 도와 소화가 잘 되게 하여 몸속의 어혈(瘀血)을 풀어 주는 효능이 있다. 또한 차가운 성질이 있어서 체질적으로 열이 많아 얼굴이 붉은 사람이나 음주 후의 숙취에 효과적인 음식으로 본다,

대게는 그믐과 초승 사이에 잡힌 것이 속이 알차고, 달이 밝은 보름 전후에 잡힌 대게는 속이 여물지 않고 부실한 것이 많다고 한다. 동양에서 달은 음기(陰氣)의 상징이고, 그 가운데 음기가 가장 강한 그믐에야 살이 여물어지는 것을 보면 대게는 차갑고 냉한 음(陰)의 성질이 강한 것이 틀림없는 듯 하다.

얼마 전 경북 영덕이 '대게특구'로 지정되어, 앞으로 귀한 대게를 먹을 기회가 많아지면 우리의 화기도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방내과 전문의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