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도자의 외국 순방에 맞춰 항공기와 철도 차량 등을 대량 구매하는 '쇼핑 외교'를 적극 구사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경제·군사적인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견제 움직임을 커다란 선물 보따리로 완화시키고, 각국과의 외교현안을 해결해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과 아시아 5개국 순방에 나선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5일 프랑스에서 에어버스 여객기 150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구입한 여객기는 좌석 간 통로가 하나인 중거리용 A320 기종으로, 액면 구입가격은 83억유로(약 10조957억 원)에 달한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가 전날 에어버스와 체결한 협조 의정서(protocol)에 대해 "앞으로 중국에 A320기종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가능성을 열고, 에어버스와 중국 간 협조 관계를 한 차원 올리는 중요한 의정서"라고 환영했다.

중국의 이번 에어버스 150대 구매 계약은 다분히 미국과의 균형을 의식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달 20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거리용 보잉 737여객기 70대를 구매하고 80대를 추가로 사는 옵션을 체결했다. 전 세계 여객기 시장을 정확히 양분하고 있는 두 항공사에서 일단 같은 수의 여객기를 구입한 것이다. 앞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지난달 10일 독일을 방문했을 때 지멘스사와 약 10억유로 규모의 고속철도 차량 60량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중국의 '쇼핑 외교' 상대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 집중된다. 미국에 대해서는 각종 외교·경제문제와 인권·종교문제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활용된다. 2003년 원자바오 총리 방미 때는 중국의 고정환율제도와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이 높았을 때다. 지난달 부시 대통령 방중 때는 위안화 절상과 무역 불균형 해소 등이 큰 쟁점이었다. 중국은 수십억달러의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겨줘, 위안화 추가 절상압력 등 쟁점을 피해가고 있다. 중국의 구매외교 이후 실제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도 약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유럽에 대한 중국의 '쇼핑 외교'에 대해, 한 서방 외교소식통은 "'연구항미(聯歐抗美)'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유럽 주요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해 미국에 대항한다는 뜻이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영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미국에 대해 독립적인 입장을 보이는 프랑스와 독일에 선물 보따리를 집중적으로 풀어놓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중국은 이런 선물 보따리에 대한 대가로 첨단무기 금수 조치 해제를 일관되게 요구해왔고,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EU) 내에서 금수 조치 조기 해제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이밖에도 이라크 전쟁, 이란 핵문제, 환경·인권문제 등에서 중국은 '쇼핑 외교'를 적절히 활용해 자국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베이징=조중식특파원 jsch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