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권상 교수<br><a href=http://search.chosun.com/man/search_man.asp?keyword=윤권상 target=new>☞인물DB 프로필 검색<

"이건 캠벨로 만든 포도주예요. 지난 8월 초에 담근 겁니다. 이 통 안에는 바나나주가 익어가고 있고요, 저건 래스프베리(복분자)로 만든 겁니다. 여기 널려 있는 감은 이제 곧 작업을 하기 위해 숙성시키고 있는 것이고…."

와인 만들기가 취미인 윤권상(尹權相·64·강원대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 교수의 춘천시 퇴계동 아파트에는 술이 가득하다. 베란다에는 18ℓ들이 술통 30개가 얼기설기 자리잡고 있고, 사랑방과 서가도 와인창고다. 5년째 한국와인동호회 회장도 맡고 있는 윤 교수의 와인 빚기는 올해로 26년째. 곁에 있던 부인 이금재(57·전통다도강사)씨는 "그동안 빚은 술을 모두 더하면 3t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집에 있는 와인이 대략 500병쯤 되려나? 이 술들은 연말연시 선물로 다 보낼 겁니다.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죠."

뜻밖에도 그의 주량은 소주 반 병. 그 이상을 마시면 이내 곯아 떨어진다. 그런 그가 감히 와인 만들기를 평생의 취미로 키우게 된 건, 유학 시절의 달콤했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공부하던 1979년, 눈이 내 키만큼 쌓였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저녁 6시쯤 연구실에서 나와 자동차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덩치 큰 미국사람 하나가 내 차를 막무가내로 세우더군요. 그러고는 차가 시동이 안 걸려서 그러니, 집까지만 태워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를 집까지 데려다 줬더니, 미국인은 집에서 만든 것이라며 포도주 한 병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어요. 집에 와서 맛을 보니, 그 향과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이튿날부터 포도주 담그는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이어져 온 그의 와인 만들기는 300번을 넘겼다. 포도, 산딸기, 고야, 딸기, 오디, 매실, 살구, 복숭아, 사과, 모과, 보리수, 참외, 바나나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과일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와인으로 변신했다. 물론 빛과 향에서 최고는 역시 포도다.

그는 자신이 만든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프랑스, 칠레의 명품에는 못 미치고 있음을 인정했다. "기후와 토양이 다르다 보니 포도 자체가 다릅니다. 지중해산 포도는 당도가 20~24에 이르는데 국내산은 최고치가 17에 그칩니다."

그가 토종 과일까지 총망라해 와인을 빚는 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가장 큰 가능성을 발견한 토종과일은 야생머루다. 색깔이 아름답고 맛도 다양하게 낼 수 있어서다.

그는 "와인빚기 취미의 가장 큰 장점은 남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술을 전혀 못하는 분이나 주량이 많지 않은 여성도 와인 한 잔쯤은 함께 마시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분위기가 저절로 떠요."

발포성 와인(샴페인)도 자유자재로 만드는 윤 교수는 "와인 만들기 자체는 전혀 까다로운 일이 아니며 5만원이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웰빙시대 최고의 고상한 취미"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효모가 병 바닥에 쌓여 나갈 때 용기를 바꿔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공기차단기를 장치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