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원의 이훈(44) 문화재연구부장은 고고학계에서 '백제 금동관의 사나이' 혹은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그가 '땅을 팔' 때마다 금빛 찬란한 유물이 발굴돼 백제사를 다시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제 금동관은 지금까지 모두 5점이 나왔는데 이 중 3점을 이훈 부장이 발굴했다. 최근 발굴된 충남 서산 부장리의 금동관과 2003년 충남 공주 수촌리의 금동관 2점이 이 부장의 손으로 햇빛을 봤다.

"공주 수촌리에서 금동관을 발굴했을 때는 주변에 뻐기고도 싶었는데, 이번 발굴의 느낌은 달랐어요. 두려움이 앞섭니다. 기초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는 보고서를 작성할 생각을 하면 사실 부담스럽죠."

‘백제 금동관의 사나이’로 불리는 이훈 충남역사문화원 문화재연구부장. 23일 오전 여자 화장용 솔로 조심스레 금동관 주변의 흙을 제거하고 있었다.

이 부장이 발굴한 수촌리와 부장리의 백제 금동관은 서기 5세기에 백제가 충남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토착세력인 마한(馬韓)의 지배자에게 하사한 위세품(威勢品). 백제의 지배력 확장 과정을 입증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서산 부장리에서 금동관을 만난 건 지난 11월 8일 오전이었어요. 그 전날 이곳에서 철제 자루가 달린 백제 솥이 사상 처음으로 나온 터라 조심조심 발굴을 하고 있었는데, 땅에서 금빛이 보이는 거예요. 여성화장용 솔로 살살 흙을 제거하기 시작했지요…."

이 부장은 공주사범대 역사교육과 출신이다. 공주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지난 91년부터 99년까지 공주대 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백제 고분 발굴에 주력하며 '땅꾼(고고학자)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백제 금동관을 3점씩이나 발굴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인생에서 세 차례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요. 발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2001년 발굴한 충남 공주 장선리 토실(土室)유적과 금동관이 출토된 공주 수촌리 고분군이 모두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2003년 충남 서천 봉선리 백제 유적 발굴 역시 고속도로 건설노선을 변경시킬 정도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평생의 '발굴복(發掘福)'을 다 누렸다고 여겼거든요."

전국적으로 매년 발굴이 1000여건 이상 벌어지지만, 사적으로 지정되는 곳은 고작해야 두서너 군데뿐. 수 백 군데의 발굴 현장이 언론 등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로 발굴 도구인 '꽃삽'을 접는다. 그런데도 이훈 부장 앞에는 연거푸 세 점의 백제 금동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선 시샘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고고학계에선 이 부장의 판단력과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이 발굴한 자료를 독점하지 않고 주변과 공유하려는 태도 역시 높게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부장은 "제가 복이 넘친 거지요"라며 "그 커다란 복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발굴 현장 동영상을 보급하는 등 고고학이 국민 곁으로 한발 다가서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