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New Right·신보수)운동을 발화시켰던 자유주의연대가 23일로 창립 1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11월 60여명의 486 지식인(40대가 된 386세대)들이 자유주의연대를 출범시키며 뉴 라이트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운동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곧 스러져 갈 단체”라고 했고, 좌파 세력은 “극우 운동권이 출범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연대는 시사웹진 뉴 라이트(www.new-right.com)를 통해 북한 인권·노동·강정구 교수문제 등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뉴 라이트의 입지를 넓혀 갔다.
18일 오전 서울 서강대 부근의 자유주의연대 사무실에서 뉴 라이트를 이끄는 논객(論客)으로 활동해온 신지호(申志鎬) 대표를 만나 지난 1년간의 활동에 대한 자기 평가를 들었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뉴 라이트 관련 강연을 하기 위해 출국하기 직전이었다.
―뉴 라이트운동의 지난 1년간 성과는….
"사회적 논쟁의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그 전에는 저쪽(좌파 세력)이 주로 공격하고, 보수 세력은 이를 막기에 급급했으나 이젠 그 역할이 바뀌었다."
―뉴 라이트운동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뉴 라이트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보수는 '수구 반동'과 동의어처럼 쓰였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좌우 세력을 혁신 우파, 수구 우파, 혁신 좌파, 수구 좌파로 나누고, 혁신 우파의 등장을 통해서 정국을 '혁신 우파 대(對) 수구 좌파(올드 레프트)'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논쟁을 촉발시켜 왔다."
―올드 레프트는 누구를 지칭하나.
"이미 세계적으로 실험이 끝나서 효용성이 폐기된 이념을 신봉하는 세력을 말한다. 동구 사회주의 실험과 서유럽에서 나타난 복지병(病)현상을 한국 사회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세력이 올드 레프트인데, 현 집권 세력에 이런 요소가 많다."
―지난 1년간 어떤 논쟁을 이끌어왔는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를 이슈화하고, 선점하는 전쟁에서 승리를 해왔다. 북한 인권과 납북자문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있었던 북한 인권·납북자 문제를 적극 제기, 사회적 화두가 되게 했다. 앞으로 납북된 동진호 선원의 딸인 최우영씨가 시작한 노란 손수건 달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작은 정부'론도 담론화에 성공했다고 본다. 교육 자율화문제도 계속 제기해 획일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왜 뉴 라이트운동이 단기간에 성장했다고 보나.
"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해 실망하고, 한나라당에 기대할 것이 없어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갈구하는 사회적 토양 때문이었다. 뉴 라이트운동을 급성장하게 한 1등 공신은 노무현 정권이고, 그 다음이 한나라당이다."
―뉴 라이트가 주력한 사업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사이버 공간과 대학을 바꾸는 것이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당선될 수 없었다. 당시는 보수 대 진보의 인터넷상 비율이 1대9였다. 현재 인터넷 사이버 공간은 보수 대 진보 간 비율이 5 대 5 정도 된다. 뉴 라이트운동이 여기에 기여했다고 본다. 최근 시사웹진 뉴 라이트에서 촉발시킨 안병직 교수의 건달정부론, 이인호 전 대사의 강정구 비판도 담론을 선도해 나갔다. 또 신보수 이념에 입각해서 대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리더스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지난 여름에는 전국 50개 대학에서 대학생 500명을 모아 4일 동안 수련회를 가지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보수 이념을 체화해서 실천토록 하는 것이 목표다."
―2007년 대선 승리를 위해 뉴 라이트와 기존 우파가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2007년 대선은 태극기와 한반도기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좌·우 대결이 아니다. 다음 대선은 태극기를 지키기 위한 '구국연합전선'이 돼야지 단순한 '우파 대동 단결론'은 필패(必敗)한다. 지금 연대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각 우파 세력이 상호 생산적인 경쟁을 하면서 결정적인 국면에서 힘을 합치면 되지, 지금부터 어깨 걸고 스크럼을 짤 필요는 없다."
―뉴 라이트는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노무현 정권 5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지난 50 년 동안 기존의 집권 세력은 큰 성과를 남겼지만 쌓인 적폐물이 많아 청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노 정권은 이를 넘어서서 단시간 내에 국가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이런 세력이 집권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연대가 자주 거론된다.
"정당은 가치 집단이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영남 기득권에 입각한 이익 집단이다. 포퓰리즘 측면에서 보면 열린우리당과 난형난제(難兄難弟)다. 한나라당은 쌀 비준안, 감세(減稅), 대북 예산 결정에서 분명한 입장을 보여줬어야 한다. 가치 집단으로서의 정신이 약하고 기회주의 속성이 강한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연대보다는 비판에 더 주력할 것이다."
―그래도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들은 뉴 라이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오는 30일 자유주의연대 1주년 활동 보고 및 후원의 밤 행사가 있다. 여기에 이른바 한나라당 대권 주자, 광역자치단체장 출마 희망자들이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왔으나 '죄송하지만 정치인은 사양한다'고 거절하고 있다. 화환도 안 받겠다고 했다. 우리는 당분간 뉴 라이트의 독자성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싶다."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뉴라이트전국연합과 자유주의 연대등 8개 단체가 모인 뉴라이트네트워크가 자주 비교되는데….
"처음에는 김 목사께서 별도의 뉴 라이트운동을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으나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발족하면서 뉴 라이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발시키고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뉴 라이트운동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라이트네트워크는 전략과 기획을 선도적으로 만들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이를 확산시키고 대중화시키면 상호 보완이 될 것이다."
―뉴 라이트 세력이 내년 지방 선거에 출마하나.
"지방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은 정치권 진출을 노리기보다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뉴 라이트 사상의 구축과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
―노동운동권 출신인 신 대표가 '전향'한 계기는 무엇인가.
"세 가지다. 내가 신봉했던 사회주의 이론이 인간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회의가 시작됐다. 울산에서 노동자로 일할 때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다시 보게 됐다. 소련과 동구권의 멸망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나를 비롯한 사회주의 신봉자들은 파산 직전의 회사 주식을 엄청난 보배인 줄 알고 사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사 학위를 갖고 연구원으로도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1990년대 중반 일본으로 정치학 공부를 하러 갈 때 내가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오면 좌·우 사상 논쟁이 다 끝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논쟁이 더 심해져 있었다. 결국 다시 운동가가 됐다. 친구들로부터는 '옛날에 우파가 정권 잡고 있을 때는 좌파운동하느라고 생고생하더니 이번에 좌파가 집권하니 우파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