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길. 4월에 시작된 '찾고 싶은 거리' 만들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대 앞길은 예쁜 산책로로 바뀌어 있었다.
"요즘 상가 투자가 붐인 거 아시죠? 여기 이대 앞길도 새로 정비되면 엄청난 상권이 될 텐데, 한번 둘러보고 가세요."
지하철 이대역 인근에 짓고 있는 주상복합 쇼핑몰 '예스apM' 청약을 권유하는 호객꾼이었다. 시간이 없다며 전단지만 받아 돌아섰지만 이런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이 곳곳에 보여 대학교 앞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대표적인 대학가인 이대 앞의 겉모습이 새롭게 변신했지만, 더 화려해진 패션상권만 형성될 뿐 대학가다운 문화·학문적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차로 좁아지고 보도 넓어져
서울시와 서대문구는 3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이대 앞을 '찾고 싶은 거리'로 변신시켰다. 전신주와 전선을 모두 땅에 묻고, 12~15m 폭이던 차로를 5m 너비로 줄이는 대신 1.5m 남짓이던 보도를 최대 5m까지 넓혔다. 직선이던 2개 차로를 중간중간 구부러진 1개 차로로 줄이고 곳곳에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를 위한 조형물)도 설치됐다.
주부 김혜경(38)씨는 "이대 앞에서는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는데 완전히 다른 곳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 앞 길에서 연세대 앞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경의선 철도 신촌역도 내년 8월까지 민자역사로 새롭게 태어난다. 신촌역 주변 노후 건물들은 헐려 문화광장으로 만들어진다.
◆"동대문에 뺏긴 패션상권 되찾겠다"
이대 앞에는 향후 1~2년 동안 쇼핑몰들이 대거 들어선다. 이대 정문 옆에 있는 '파비'(지하1층 지상 5층)가 올해 안으로 재단장해 문을 열 계획이고, 2006년 문을 열 신촌 민자역사(지하2층 지상6층)에는 '밀리오레'가 들어선다. 이대 전철역 인근에는 '예스apM'(지하6층 지상7층)이 2007년 8월 완공될 예정이다.
쇼핑몰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기존 상가들도 재개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학교 앞이라는 점을 들어 27m(7층)로 층고제한을 두고 있지만, 재산권을 앞세운 상인들의 개발의지를 막기엔 힘이 부친다. 재개발이 이뤄질 경우 현재 블록당 40개선에 불과한 점포 수가 블록당 2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현상가번영회 김용호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동대문 상권 활성화와 함께 위축된 이대 앞 상권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쇼핑 편의시설을 늘리고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들 반대 움직임
그러나 정작 이대 앞에서 문화공간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촌 민자역사에 복합상영관 '메가박스'가 들어서는 등 영화관은 계획돼 있지만 연극이나 음악 공연장, 서점은 찾아볼 수 없다.
2003년엔 서대문구청이 미용실이 많다는 이유로 이대 앞을 '미용특화지구'로 지정하려다 중단된 일까지 있었다. 이대 철학과 김혜숙 교수는 "최근 추진되고 있는 '찾고 싶은 거리' 프로젝트도 결국 '쇼핑하기 좋은 거리'로 귀결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상업화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학교 정문 앞에 내건 '이대 앞 상업화를 반대하는 이화인 연대모임'의 이수(활동명·재학생)씨는 "11월 중순부터는 상업화 반대 문구가 적힌 리본을 나눠주는 등 반대 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규상 서울시 도시관리담당은 "학교 앞에 걸맞는 문화공간을 유치하기 위해 용적률을 기본용적률보다 20% 더 허용하는 등 여러가지 유인책을 마련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임대료 부담 때문에 공연장이나 서점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 환경디자인과 최경실 교수는 "정부와 학교, 업주들이 모여 이해충돌을 피하면서 최소한의 학구적 문화를 살려내기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