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8시쯤 경북 영천시 작산동 영천희망원. 형광등 불빛이 반짝이는 30평 남짓한 강당에서 "이크! 에크!"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대고 있었다. 초·중학생 30여 명이 2명씩 마주보며 제각각 몸을 굼실거리고 있었다. 상대방을 노려보던 한 남자아이가 갑자기 다리를 쭉 뻗어 상대의 뺨을 친다. 또 다른 아이는 양팔을 빙글빙글 돌리다 다리를 오금에 걸어 몸 쪽으로 끌어당겨 상대를 넘긴다. 영천희망원 원생들이 택견 승급·승단 시험을 위해 차 메기기(발차기기술), 딴죽 메기기(걸이기술)를 맹연습 중이었다.
모두들 부모에게서 버려졌거나,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맡겨진 아이들. 그러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영천남부초등학교 6학년 노재성(12)군은 "택견을 배울 때만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신난다"고 말했다.
영천희망원 아이들은 요즘 '택견'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매일 밤 열리는 택견교실에는 56명의 원생 중 영아와 수험생 등을 뺀 4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재성이는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시 연무대에서 열린 '제7회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 택견대회'에서 개인전 막급(무제한) 3위를 차지했다. 택견을 시작한 지 불과 6개월 만이다. 우승보다 값진 결과였다. 또 이달 20일에는 희망원 친구 구본삼(11·영천남부초 5학년)군과 함께 '대통령기 전국대회'에도 나가기로 했다.
그늘진 아이들에게 택견의 빛을 가져다 준 주인공은 경산에서 택견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훈태(33)씨. 2002년 말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친 박씨는 가정살림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아내와 이혼하게 됐고, 아이들을 키울 능력이 없자 딸 하늘(5)이와 아들 정표(3)를 영천희망원에 맡기게 됐다. 이후 몸을 회복하고 경산에 전수관까지 낸 박씨는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준 희망원에 어떤 방법으로든 보답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택견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택견을 통해 아이들의 웃음을 찾아줬다. 박씨는 "낯을 가리던 재성이는 택견을 배운 뒤 먼저 뛰어와 인사할 만큼 밝아졌고, 시시하다며 관심도 갖지 않던 본삼이는 요즘 택견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며 아이들 자랑을 늘어놨다.
희망원 이상근(52) 원장은 "아이들이 운동을 시작한 후 성격이 밝아지고 의욕이 가득 찬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