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새벽(한국 시각) 한국 주부 5명이 미국 뉴욕 마라톤에 도전했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모인 프로와 아마추어 마라토너 3만8000여명이 이들과 나란히 뛰었다. 세계 최대 마라톤인 뉴욕 마라톤은 뉴욕 남쪽 끝 스태튼 아일랜드를 출발해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를 거쳐 맨해튼 센트럴파크까지 달리는 코스. 도중에 허드슨 강을 네 번 건너면서 마주치는 11월 강바람은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 날아온 주부들은 마라톤 입문 1∼5년차 열혈 아마추어들. 이 중 '58년 개띠 마라톤 클럽' 회장인 권라혜(權羅惠·47·서울·주부)씨는 이미 베이징 마라톤 등 해외 대회를 두 차례 뛴 경력이 있지만, 나머지 4명은 모두 이번이 첫 해외 원정이다. 권라혜씨는 동갑내기 회원 480명의 응원을 받으며 출국했다. 서대전 우체국에 다니는 김은순(金恩順·46)씨는 직장에 연차를 냈다. 인천에서 꽃집을 하는 김은숙(45)씨는 결혼 20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뉴욕까지 날아와 달린 이 주부들에겐 남다른 사연도 있다. 전남 보길도가 고향인 권춘희(權椿姬·45)씨는 수원에서 대기업 사원교재 납품업체를 운영 중이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아궁이에 불 때는 시골 생활이 지긋지긋해 전기밥솥에 밥 지어 먹는다는 서울로 무작정 가출"했고, 가방 공장 노동자로 10년 넘게 일하다 자기 회사를 차려 억대 매출을 올리게 됐다. 그러나 3년 전 남편과 아들, 딸을 미국 애틀랜타에 유학 보낸 뒤 허탈감이 엄습했다. '기러기 엄마'의 외로움을 풀기 위해 마라톤에 입문한 권씨는 이제 보름에 한 번은 전국 어디든 대회에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매니아다. 이날 애틀랜타에서 올라온 가족이 뉴욕 마라톤 결승점에서 권씨를 맞았다.
10년 전 이혼한 뒤 충남 계룡시에서 발 마사지 가게를 하며 딸 셋을 혼자 키운 오영미(吳英美·41)씨는 "올해 대학생이 된 맏딸(19)에게 엄마가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어려서 부모의 이혼을 겪은 딸은 고등학생이 된 뒤 집 밖으로 돌았고, 오씨는 마라톤을 하며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삭였다. 그는 "일찍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온갖 영업을 다 해 봤지만 한 번도 인생을 원망한 적은 없다"며 "딸이 엄마의 마라톤을 통해 자기 인생을 바라는 대로 헤쳐나갈 힘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