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야구공을 배트 위에 올려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해 봤지만 공은 계속 떨어졌고 사진기자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변해갔다.
"멍청한 생각이었네."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포즈'를 생각해 내려는 순간, 장종훈이 거들었다.
"이러면 되잖아요."
그는 씹던 껌을 배트에 천연덕스레 붙여놓고 척하니 공을 올려놓았다. 그리곤 씩 웃었다. 음, 이건 '촌놈'이라는 그의 별명 그대로의 표정 아닌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베테랑 촌놈'. 2000년 10월 대전구장, 그가 300홈런을 기록한 며칠 후의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사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때 "400홈런을 치고 떠나겠다"던 기록의 사나이는 340홈런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제는 애들도 자기들 아빠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요."
장종훈의 집에는 그동안 모아둔 40여권의 신문기사 스크랩이 있다. 매년 쑥쑥 늘어나던 스크랩북이 요 몇 년은 제자리 걸음이었다(그는 "글쎄, 신문 날 일이 있어야죠"라고 했다). 올해 9살, 5살인 두 아들도 야구선수 하면 무조건 이승엽인 줄 알고 있었다나.
그러던 아이들, 지난 9월 15일 아빠가 대전구장 은퇴식에서 오픈카를 타고 다이아몬드를 돌며 카퍼레이드하는 모습을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종훈은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기사 스크랩 읽게 되면 아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지난달 말, 그는 한화의 2군 코치로 공식 선임돼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87년 연습생에서 1군으로 뛰어올라 신화를 이룩한 18년이 지나고, 이제는 연습생을 발굴해야 할 37세의 젊은 지도자로서 다시 그라운드에 선 것이다.
그가 코치 부임 후 첫 임무인 외국인 선수 발굴을 위해 도미니카에 머무는 동안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강타자 이승엽(일본 롯데)은 일본 시리즈에서 주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장종훈에게 "당신의 후계 강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3타점을 모두 뽑았다"고 전했더니 "후계라니… 나야 영광이지만"이라고 쩔쩔맨다. 이런 모습이 그의 인간적 매력인 듯하다.
'기록의 사나이' 장종훈이 갖고 있는 수많은 1위 기록은 하나씩 사라져 갈 운명이다. 2004년까지 그가 갖고 있던 공격 9개 부문 1위 기록은 1년 사이에 6개로 줄었다. 언젠가 그의 기록 모두가 깨지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올라간 그의 전설적인 '연습생 신화'만은 영원히 남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