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게 조명은 햇볕과 같다. 그 아래에서 모든 게 인식되고 감응된다. 그 빛의 색깔과0 밝기를 연출하는 사람, 바로 조명감독이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조명감독의 이같은 수고로움을 알아주지 않는다. 화려한 공연이 끝나면 관객은 배우와 연출자에게만 갈채를 보낸다. 조명연출이 아무리 훌륭해도 조명감독의 근무처인 주조종실로 꽃을 들고 찾아오는 관객은 없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들이 좋아하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죠"
춘천 한림대학교 일송아트홀의 조명감독 정항섭씨(35)-. 정감독은 대학시절 그룹사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던중 무대의 '빛과 색'에 매료되어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10여년 동안 그는 콘서트와 연극, 마임 등 100회 이상의 무대 조명을 연출하고 있다.
공연은 주로 주말이나 밤에 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여가지만 그에게는 이 시간이 업무에 몰두해야 할 시간이다.
단 몇 시간의 공연을 위해 그는 최소 3일 이상을 밤낮으로 작업한다. 개인 시간과 취미 생활도 제약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빛'에 미치지 않고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야외 공연 때는 무거운 조명 기기를 들고 10여m 높이의 철골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조명은 전기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감전사고의 두려움도 따라다닌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항상 위험과 긴장의 연속이다.
"한번은 공연 도중 조명기기가 무대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무대 구석 쪽이라 바로 아래에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지요."
요즘은 조명 장치가 발달해 예전처럼 공연도중 조명이 멈추거나 아예 꺼져버리는 최악의 경우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공연이 시작하면 아직도 긴장한다. "어떤 경우에는 저의 실수나 갑작스런 돌발 상황으로 원래 계획한 조명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보통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근슬쩍 넘어가지만 제 자신은 저의 잘못과 태만으로 몹시 괴로워지죠."
그는 처음에는 화려함과 역동성에 매료되어 콘서트와 같은 쇼 조명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이나 무용, 마임과 같은 순수 예술방면의 조명에 더 많은 열정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대형 콘서트 무대에는 보통 1500개 이상의 조명기기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마임은 몇 시간 공연에 40~50개 정도의 극히 제한된 조명만 사용하여 절제의 미를 살려내는 묘미가 있습니다. 저의 역량과 예술적 감성이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올 수 있는 것이죠."
정씨는 2002년 춘천 마임축제를 잊지 못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이스라엘의 마임 공연팀 '클리파'의 무대 조명을 담당했을 때 였다. "공연이 끝난 후 그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한국에 이렇게 최고 수준의 조명 연출자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그런 칭찬이 이 일에 계속 몰두하도록 나를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는 "공연은 배우가 하는 것이죠. 하지만 배우와 무대위의 소품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은 바로 조명입니다."라며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염창선 인턴기자(한림대 언론전공4년) duackd@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