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여행을 예약하는 시대에, 걷는 일이야말로 가장 넉넉한 호사일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타면 쌩하니 달려갈 100리길이 걸어서는 꼬박 하룻길이다. 산과 사막, 들과 강을 가로질러 먼먼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자하는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른다.
결혼 15년째인 한 부부가 우리 옛길을 따라 걸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르는 '영남대로' 950리(450㎞)와, 해남에서 서울까지 '삼남대로' 970리(470㎞)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지리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나와 있는 길이다. 1860년대에 발간된 '대동지지'에는 모두 10개에 이르는 큰길(大路)이 경로별로 자세히 적혀 있다. 조선시대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민족의 대동맥이었다.
김재홍(47)씨와 부인 송연(36)씨는 영남대로 15일, 삼남대로 17일을 걸었다. 하루에 짧게는 11㎞, 길게는 36㎞씩 이동했다. 현대 과학기술이 빚어낸 축지법을 거부하고 이 땅을 꼬박 걸으면서 이들은 새삼 이 땅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길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마치 몸의 핏줄기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길이 있었지만, 어느덧 잊혀지고 사라져가고 있다." (책 중에서)
부부는 인도 배낭 여행을 하기 위해 체력훈련 삼아 국토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무턱대고 떠났던 첫걸음은 밤톨만한 물집에 못이겨 이틀 만에 끝났다. 다시 계획을 짜서 동해안에서 강화까지 국토 동서횡단을 하면서 우리 땅에 폭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옛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석달 넘도록 '대동여지도' '해동지도' 등 옛 지도와 문헌을 뒤져 자료를 준비했다.
이들은 숱한 사람들이 오고간 옛길을 걸으며 우리가 오랫 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를 만난다. 전남 해남서부터 영암까지 걸으며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발자국을 좇고, 나주에선 유배가는 다산 정약용의 탄식을 듣는다. 이몽룡이 어사또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길(전북 여산·익산)을 따라가고, 동학 농민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걷기도 한다(충남 공주).
이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길이 있는가 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을 수 없는 길도 있었다. 일제가 철도를 놓으며 '한양천릿길'을 어떻게 뒤바꾸어 놓았는지, 우리 땅의 뒤틀린 팔자도 현장을 밟으면서 실감한다. 철도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는 모두 추풍령을 넘지만, 그 길은 이용자가 훨씬 적은 영남우로(右路)였다. 영남지방서 한양에 이르는 대로(大路)는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는 길이었다. 그 문경새재 일대가 지금은 심심산골인 것을….
부부 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은 소중한 덤이다. 장맛비로 인한 감기와 물집을 무릅쓰고 뚜벅뚜벅 걷는 아내가 대견스러워 남편이 말을 건넨다. "당신 다리 참 단단하게 생겼다. 잘 걷게 생겼어." 그러자 아내는 애교 넘치게 받는다. "그렁께 쫓아왔징."
책 말미에 '대동지지'의 옛길 경로와 현재의 지명을 비교하여 실었다. 대동여지도를 한글화 한 '한글대동여지도'도 있다. 걷기 여행을 할 사람들 위해 야영과 숙박 안내, 여행 일정잡기 정보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