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일본 야구의 상징인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아시아 홈런왕’의 위용을 마음껏 뽐냈다. 이승엽은 26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의 고시엔 구장에서 벌어진 한신 타이거즈와의 재팬시리즈 4차전에서 선제 투런 홈런 포함, 4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소속팀 롯데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이승엽은 팀의 3득점을 혼자 뽑아냈다. 롯데는 이로써 4연승으로 시리즈를 가볍게 마무리, 1974년 이후 31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재팬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4경기에서 타율 0.545(11타수 6안타) 3홈런 5타점을 기록한 이승엽은 그러나 우수선수에 선정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시리즈 MVP에는 1·2차전에서 8연타석 안타라는 재팬시리즈 신기록을 세운 동료 이마에(타율 0.667)가 뽑혔다. 한·일 양국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선수가 된 이승엽은 다음달 10일부터 일본에서 벌어지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서 친정팀 삼성과 격돌한다.
좌익수 겸 7번 타자로 나선 이승엽의 방망이는 첫 타석부터 불을 뿜었다. 0―0으로 팽팽히 맞선 2회초 2사 2루. 이승엽은 올 시즌 9승6패 방어율 2.94를 기록한 한신의 우완 선발 스기야마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다. 스기야마는 이승엽 공략법을 알고 있다는 듯 4구째까지 모두 슬라이더를 던졌다. 그러나 이승엽은 2구째 바깥쪽 높은 공에만 헛스윙했을 뿐 나머지 유인구를 모두 골라내며 볼 카운트 1―3으로 유리하게 끌고 갔다. 이어 스기야마가 뿌린 제5구가 또다시 슬라이더(126km)로 들어오자 이승엽은 기다렸다는 듯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다.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선제 2점 홈런포. 1·2차전에 이은 이번 시리즈 3호 홈런이었다. 고시엔 구장을 가득 채운 한신 팬들은 순간 적막에 휩싸였다.
이승엽은 두 번째 타석부터 자신을 상대하러 들어오는 한신 좌투수들을 상대로 잇달아 장타를 터뜨려 왼손투수에게도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이승엽은 4회 1사 2루에서 바뀐 왼손 투수 노우미의 초구 한복판 140km짜리 직구를 받아쳐 좌중간을 뚫는 적시 2루타를 날렸다. 또 6회에도 역시 왼손 투수 윌리엄스와 풀 카운트 접전 끝에 좌중간 펜스 상단에 맞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다. 아쉽게 홈런을 놓친 이승엽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구르자 3루까지 내달렸지만 태그아웃돼 2루타로 기록됐다. 만약 세이프됐다면 사이클링 히트까지도 노려볼 수 있던 상황. 이승엽은 9회 마지막 타석에서도 우전안타를 뽑아냈다. 롯데는 6회말 2점을 내줬지만 마무리 투수 고바야시 등 불펜진이 1점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