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핀터는 한국에서 일찍부터 널리 소개된 극작가다.
영문학과 연극 양쪽에서 핀터는 인기 작가다. 부조리극과 정치극 형식을 함께 갖춘 그의 작품은 현대 영미(英美) 드라마 분야에선 '살아있는 클래식'으로 통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정 작가의 페스티벌로는 유일하게 '핀터 페스티벌'이 5년째 열리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인 '티 타임의 정사'와 '덤 웨이터'는 70년대 이미 소개됐다. '한국영어영문학'과 '현대영미 드라마', '영미문학 페미니즘' 등 학술지에도 핀터 관련 논문이 종종 등장한다.
핀터는 최근 정치적 발언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3년 11월 영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 그는 "오늘날 미국처럼 이토록 미움받는 나라는 없었다"며 "미국은 엄청난 불량 국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핀터의 정치성과 성(性)정치성' 등 핀터 관련 논문을 잇따라 발표해온 정문영 계명대 교수는 "원래 베케트의 뒤를 잇는 부조리극 작가로 알려진 핀터가 80년대 이후 정치적 활동가로 변신하면서 초기의 부조리극까지 정치극으로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2000년 런던 러셀 스퀘어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핀터를 직접 만난 정 교수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받았다"면서 "당시 그가 새로 쓴 희곡 '축하'를 낭송했는데, 최근 후두암에 걸려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정치적인 함의와 인간 관계의 부조리함으로 읽어낸다.
그의 언어가 가지는 희극성도 인기 요소다.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른 '덤 웨이터'는 화려한 도시의 거리에서 추방돼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을 전전하는 두 명의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으로, 결국 두 사람이 킬러와 살인대상으로 만나는 슬프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갱스터 드라마로 변주되기도('달빛 멜로디')했다.
2002년부터 대표작 '생일파티' 등 핀터 작품만 전문적으로 올리는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다. 지난 9월27일부터 10월2일까지 서울 블랙박스 씨어터에서 열린 제 3회 핀터 페스티발에는 '콜렉션' '귀향' '핫 하우스' '배신' 등 4작품이 공연됐다.
'최후의 한 잔' '산골 사투리' 등 극작과 연설문 '극작에 대하여' 등 핀터의 작품들은 평민사에서 전집(9권)으로 출간돼 있다. 핀터는 영국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위트'(Wit)에서 16세기 형이상학시를 연구하는 영문학자의 아버지 역으로 잠깐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1930년 10월 10일:영국 런던에서 유대인 양재사의 아들로 출생.
· 1942년:해크니 공립중학교에 입학. 학생 연기자로서 맥베스, 로미오 등의 역할을 함. 이때 만난 교사 조지프 브리얼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생애의 방향을 연극으로 정하게 됨.1948년:왕립 연극학교 입학. 신경 쇠약, 양심적 군입대 거부와 그로 인한 구속 기소 등 불행한 시기를 보냄.
· 1949년:왕립 연극학교를 그만 둠.
· 1950~53년:다양한 극단에 소속된 채 아일랜드의 여러 지방 순회.
· 1956년:여배우 비비엔 머천트와 결혼. 소설 '블랙 앤 화이트' 발표.
· 1957년:처녀 희곡 '방(The Room)'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극작 시작. '생일파티(The Birthday Party)' 발표. '생일파티'는 당시엔 "사뮈엘 베케트의 흉내를 잘못냈다"는 등의 혹평을 받았으나 이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재평가받음.
· 1959년:'관리인(The Caretaker)'이 비평적 성공을 거둠.
· 1964년:'귀향(The Homecoming)'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음.
· 1980년:작가이자 역사가인 안토니아 프레이저와 결혼.
· 1981년: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영화 각본으로 만드는 등 영화·TV 각본 여러 편 집필.
· 1997년:문학적 업적을 기린 '선데이 타임스'상 수상.
· 1999년:'예찬'(Celebration)' 발표.
· 2000년:이탈리아의 '브리안자 포이트리'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