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영화 '너는 내운명'에서 직설법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박진표 감독.

데뷔작 '죽어도 좋아'는 7만명이 봤다. 지난달 23일 개봉된 영화 '너는 내 운명'(제작 영화사 봄)은 벌써 195만명(3일 기준)이 들었다.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접근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이번엔 다방 '레지' 출신의 여자, 더욱이 에이즈에 걸린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를 내세웠다. 둘 다 이 세상에 없을 듯한,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너는 내 운명'의 경우,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는데 그 진심이 제대로 통했다. 개봉 2주차에 박스 오피스 1위를 지키며 흥행롱런 중. 우직한 직설 화법으로 진솔한 사랑이야기를 완성해낸 박진표 감독. 그는 영화처럼 에둘러 말하는 법이 결코 없었다.

-흥행을 자신했나.

▶망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싶었다. 영화사도 "용기 있게 해보자"고 했고, 투자사도 손익분기점만 맞추면 다행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신파에 에이즈까지 등장하니, 솔직히 망할 만한 요소가 더 많았다.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몇 년 전 신문 귀퉁이에 나온 기사 한 줄에 모티브를 얻었다.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고, 하고 싶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 영화는 믿고 싶지만 못 믿는, '울트라 판타지'다.

-캐스팅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두 배우 모두 캐스팅 0순위였다. (전)도연씨의 확답을 듣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렸다. 내가 도연씨라도 쉽사리 안 했을 것이다. 윤락녀에 에이즈에 걸린다는 설정도 그렇고, 자칫 잘못하면 대상화될 수 있는 역이었다. 또 "아무리 실화더라도 공감할 수가 없다"며 도연씨가 주저했다.

-어떻게 설득했나.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독대를 했다. 도연씨 표정은 정확히 "못하겠어요"란 말을 내뱉기 직전이었다. 그때 딱 두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영화의 실제 모델 것이었다. 나 또한 이 사진을 보고 영화를 기획하게 됐는데, 그 남자가 여자와 이별한 뒤 180도 달라진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때 "그동안 이해가 안 됐던 시나리오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도연씨가 이야기하더라.

-워낙 연기파들이기도 하지만, 두 배우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여섯 컷으로 나누어져 있던 베드신을 한번에 몰아서 찍었다. 상황에 따라 배우 호흡에 따라 시나리오에 변화를 줬다. (황)정민씨의 목욕탕 댄스 장면은 실제 모습을 옮겨온 것이다. 정민씨는 노래방에서도 그런 귀여운 포즈로 노래부른다.

-현장에서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했다던데.

▶'죽어도 좋아' 만든 놈이 촌스러운 시나리오로 들고다니는데 어찌 의심이 안 되겠는가. 배우들의 마음이 풀어지도록 편하게 해주고 싶어 택한 방법이었다. 두 배우 모두 작품에 올인하는 스타일 아니냐.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는데, '현장 대박'이란 말이 딱 우리 영화를 놓고 하는 이야기다.

-'죽어도 좋아' 때와는 다른 본격적인 상업영화를 찍은 셈이다.

▶상업적인 책임감 등 이것저것 걱정을 많이 했는데 촬영하면서 다 없어졌다. 제작진과 한번도 얼굴 붉힌 일이 없다. 나의 투박함을 세련되게 다듬어준 제작사에 감사하고 싶다.

-그래도 제작비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을텐데.

▶물론 헝그리 정신을 발휘한 장면도 있다. 극중 돼지떼를 묻는 장면은 고작 열마리를 놓고 찍었다. 정민씨가 송아지를 받아내는 장면에선 산기가 있는 소를 대여섯 마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달랑 한 마리 섭외해서 배우랑 전체 스태프가 30여시간을 기다렸다.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가.

▶다큐멘터리 PD로 오랫동안 일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실화가 갖는 우직한 힘에 끌린다. 특이하다 싶은 사연은 스크랩해놓는 게 오랜 습관이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내가 살고 싶고, 보고 싶은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힘들고 각박한 이 세상에서 힘이 되도록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다.


◆ 주목! 이대사
"죽어도 좋아."
(극중 황정민이 전도연에게 강렬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하는 말)

▶만화 '캔디'에 비유해서 그 심정을 설명했다. 테리우스가 캔디를 안아줄 때, 캔디의 심정이 딱 그러했으리라고. 살다보면 너무나 행복해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박감독의 데뷔작 이름을 그대로 옮겨온 사실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대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
(극중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면서 첫데이트를 즐기던 황정민이 전도연에게 하는 말)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옮겨온 듯한 이 대사는 '봄날은 간다'에 대한 오마주의 성격이 깊다. 박진표 감독은 자칭타칭 허진호 감독의 광팬. 충무로 입성 전부터 허 감독을 좋아했다는 박감독은 허 감독의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정서에 매료됐다. 지금도 우울해지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곤 한다고.

(스포츠조선 전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