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에서 김정은은 지난 8년간의 내공이 뿌어내는 절정의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올해 최고의 멜로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개봉된 영화 '사랑니'(감독 정지우, 제작 시네마서비스)에서 김정은은 보이지 않는다. 열일곱살 이석과 사랑에 빠진 조인영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CF 속 이미지들, 엇박자식 코미디 연기. 모두 버렸다. 무장해제한 채, 백의종군했다. 그리고 사랑니처럼 아릿한 사랑의 아픔을 스크린에 펼쳐놓았다.

"저도 서른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인영의 감정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진심을 다한 연기라고 생각하는데,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사랑니'의 이야기 전개는 상당히 독특하다. 서른살 인영 앞에 나타난 열일곱살 인영은 그녀의 '과거'일 수도 있고 유사한 첫사랑의 상처를 앓는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관객의 상상력에 답을 맡겨둔 이 영화는 그래서 상당히 매혹적인 동시에 불친절하기도 하다. 우연과 필연이 버무려진,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영화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많은 부분 김정은의 힘이다.

"감독님을 무조건 믿었어요."

정지우 감독의 디렉션은 '덜어내라'는 것이었다. 이전 그녀의 연기가 표정들로 꽉 찬, 친절한 설명형이었다면 이번엔 정반대였다. 속에서 분노와 욕망과 좌절 등이 요동쳐도 무표정한 느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석을 처음 집에 바래다준 날, 인영이 비를 맞으면서 갑자기 이석의 뒤를 쫓아가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 앞뒤 설명 없이 등장하는 이 신에서 김정은의 표정은 아주 적절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이를 위해 때로는 한 장면을 찍는데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그녀와 정지우 감독이 토론을 시작하면 모든 스태프들이 무조건 기다려줬다.

결정체만을 건져낸, 기나긴 정제의 과정을 거친 덕분에 관객들은 그녀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전염된다. 엔딩크레딧이 오르는 순간엔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슬며시 꺼내보며 상처를 다독이게 된다.

"사랑은 롤러코스터와도 같다. 때론 구토를 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지기도 하지만 도중하차가 불가능하다"는 김정은은 "그러나 놀이공원까지 갔는데 겁을 먹고 그 짜릿함을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용감한 그녀에게 연기는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듯. 그녀의 멋진 선택이 관객들에겐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짜릿함을 안겨주게 되는 것 또한 물론이다.

(스포츠조선 전상희 기자)